[동아광장/정종섭]‘권력의 악습’ 되풀이할 건가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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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이나 정치학에 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적인 이익이나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권력의 인격화(personnalisation du pouvoir)’라는 말이 있다. 국가권력과 같이 국가이익과 국민 전체의 행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하는 공적인 권력이 지배자의 성격, 이익, 주관적 기호, 가치판단, 지식 수준 등에 따라 제멋대로 오용되고 남용되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권력의 인격화는 군주국가, 족벌체제, 독재, 권위주의 통치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는데 현대 입헌민주국가에서는 이런 권력의 인격화를 소멸시키고 ‘권력의 제도화’를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권력의 제도화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의하여 국가권력의 작용이 객관적인 시스템으로 정립되는 것을 말한다. 국정 운영의 시스템화라는 것도 이를 말한다. 권력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면 권력을 가진 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국민이 위임한 바에 따라 그 본래의 기능에 합치되게 행사하며, 국가는 비로소 공공성과 당파적 중립성을 가지게 되어 공익 실현의 기능을 하게 된다. 오늘날 민주법치국가에서 국가권력은 제도화될 때만 정당성을 가진다. 권력의 제도화를 구현하는 것이 권력 분립이고, 절차적 민주주의이며, 헌법상의 각종 권력 통제장치이다. 시민사회의 권력 감시도 이런 권력의 제도화에 기여한다.

권력 제도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 지배자의 권력 남용에 휘둘리지 않고 더욱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데 있다. 따라서 권력의 제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권력의 인격화가 발생하는 곳에서 국민은 고통의 질곡 속에서 신음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독재체제나 권위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역대 정부에서 현재까지 ‘선출된 군주’의 속성을 가진 대통령을 권력의 중심에 놓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의 인격화가 발생할 소지가 상존한다. 그래서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의 실패는 국가 실패로 이어진다.

현 정부에서도 인사권이나 사면권 등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해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정부들에서도 대통령의 추종자들을 능력과 무관하게 고관대작의 자리에 앉히거나, 각종 공적인 자리에 ‘낙하산식 인사’를 하거나, 악역을 맡거나 아부를 한 자들에게 하사품인 양 자리를 하나씩 안겨 주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 대신 ‘인사가 망사(亡事)’라는 말도 생겨났다. 대통령의 임기 막판에는 대통령 주위에 있는 자들끼리 훈장까지 하나씩 나눠 챙기는 기막힌 일까지 있었다. 끝 모르는 욕심으로 헌법의 영전 조항은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모를 것 같은 국민은 그렇게 얻은 자리와 훈장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안다. 아마 자리 하나 얻은 사람들도 뒷날에는 부끄럽게 살아 갈 것이다.

실로 실망스러운 것은 이런 구악을 극복해야 할 현 정부가 여전히 그런 행위를 반복하고 있고, 이런 잘못을 지적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너 서클의 사람만으로 자리를 돌린다거나, 해당 기관의 사람들이 강력히 반대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낙하산 인사’를 한다거나, 빈 자리가 나면 어디든 자기 사람으로 채우거나, 형평과 정의에 어긋나게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 등등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정치적인 호흡을 같이 하는 사람을 국정 운영에 기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연하기에 경우를 따지지 않고 이를 ‘코드 인사’라고 하며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지만 거기에는 정당성과 적합성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킬 때 비로소 타당성을 가진다.

대통령의 인사권만이 아니라 외교권도 그렇고, 국정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도 그 행사에서 권력의 인격화가 발생하면 안 된다.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올바로 행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국민이 이 정부를 외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권력의 인격화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여당까지 나서서 대통령의 잘못을 비판하고 갈라서자는 말까지 나오는 수준이면 이제는 비판에 대해 경청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겸손한 것이 진정 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종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 jsch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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