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병훈]레임덕이 두려운가

  • 입력 2006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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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정말 쉬고 싶다. 이날 하루만은 정치인들 얼굴을 안 봤으면 좋겠다. 일주일 내내 땀 흘리며 일한 사람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일요일까지 텔레비전에 나온다. 국민을 괴롭히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그제 청와대 모임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심각한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진지하고 긴장된 분위기’에서 길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일에 관심 없다.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다. 지금 국민은 지리멸렬 대한민국호(號)를 되살릴 구체적인 처방을 ‘타는 목마름으로’ 고대한다. 아니 그런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씨름하며 고뇌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권력누수니 정권재창출이니 따위는 ‘당신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합창하고 나왔으면 더 좋을 뻔했다. 이 노래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데, 청와대 사람들이 새겨 불러야 할 노랫말이 많다. ‘새날이 올 때까지’ 뜻을 위해, 역사를 위해 멸사봉공, 분골쇄신을 다짐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참여정부 3년 반 만에 새날이 밝기는커녕 ‘아, 옛날이여’가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고 있다. 국운이 곤두박질친다는 조바심이 팽배하고 있다.

그동안 이 정권이 많은 과오를 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지지부진함을 노무현 대통령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것은 원래 어려운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계는 선진국으로 넘쳐 났을 것이다. ‘절반의 성공’을 넘어가자면 비상한 각오와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많은 나라가 이 심연(深淵) 앞에서 비틀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당분간 한국 정치는 레임덕의 망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노무현 정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민주주의에다 ‘5년 단임제’의 질곡까지 겹쳐 누가 정권을 잡든 제2, 제3의 노무현이 될 수도 있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 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은 한국사회가 당면한 이런 구조적 난관을 너무 가볍게 보았다. 공부도 해 보아야 질문거리가 생기는 법이다. ‘반미면 어때?’ 하면서 안보를 챙기고, 분배를 앞세우면서 경제성장을 도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도 아직은 풀지 못했다. 정치는 감상(感傷)이 아니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이상론이란 무능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여당의 ‘배신’에 대해 얼굴 붉힐 자격도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남은 임기 동안 지금까지 못다 한 일을 일거에 해결하리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없다. 과욕은 열등감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저 방향만 잡아 주면 족하다. 다음 정권이 밀고 나갈 로드맵만 성실히 작성해 주어도 대단한 업적을 남기는 셈이다. 글자 그대로 ‘세월은 가도 산천은 안다’. 이제부터라도 새날을 위해 온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식물대통령’이 되지 않는다.

물론 ‘노무현과 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도 있다. 지금 이대로 내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한민국 역사에 개혁이니 진보니 하는 말이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그리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다시는 울리지 않게 하는 것도 이 정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노무현 도구론’이 이런 식으로 끝나기를 바라는가.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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