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석춘]‘대한민국 일방운전’ 올해로 끝내자

  • 입력 2005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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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대규모 집회가 예정된 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여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버스를 타면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목적지에 간다는 안도감으로 차창 밖 풍경과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순응하게 된다. 퇴근 시간인 늦은 오후 라디오에선 저녁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좌석은 꽉 찼고 젊은이 몇몇이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난무하면서부터 승객의 시선은 더욱더 창밖을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창 밖으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의 함성이 버스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저녁 뉴스는 국회에서 여야가 대치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버스 안 젊은이 몇몇은 바깥 상황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승객은 차가 막힌다고 짜증을 부리는 표정이었고, 기사는 신경질적으로 가속기와 브레이크 페달을 번갈아 밟았다. 오랜만에 버스를 이용하는 느낌은 이때부터 결코 편안한 것이 되지 못했다.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보다는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사회적 갈등과 무관심이 오랜만에 몸을 실은 버스 속의 나를 짓눌렀다.

2005년은 이런 한 해였다. 나라 안과 밖이 다른 원리로 움직였다. 삼성이 무섭다는 일본이 정신을 차려 삼성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한국을 모델로 발전한 중국이 인도의 추격을 경계하기 시작한 해다. 다른 나라 모두 최고라고 평가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우리 집권세력만 부정하는 해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이란 버스를 모는 기사, 즉 대통령은 라디오를 ‘386’ 주파수에만 고정해 놓고 세상을 들었다. 여당과 야당은 당리당략을 신념으로 포장해 서로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수도를 이전하겠다”와 “절대 안 된다”가 대치했고, “사학법을 개정하겠다”와 “절대 안 된다”가 대치했다. 그러나 절대 안 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과 대치했다. 과거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받들어 죽은 이들의 무덤을 파는 ‘힘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세상도 대치 중이었다. 줄기세포가 있다 혹은 없다는 주장 하나하나에 저질의 댓글들이 전쟁을 벌였다. 이 시끄러운 와중에 이어폰을 끼고 유유자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말을 해도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 말을 알아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느 때보다 많았던 한 해였다.

교수신문이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05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잘 드러내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이 꼽혔다고 한다. 주역에 나오는 말로 위에는 불이 있고 아래에는 물이 있어 극단의 대립을 상징한다고 한다. 2004년에는 ‘당동벌이(黨同伐異)’가 뽑힌 바 있다. ‘같은 무리와 당을 만들어 다른 무리를 공격한다’는 뜻으로 분열의 2004년을 상징한다.

“뉴스가 지겹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럴 때 이어폰 끼고 세상과 유리되려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남의 싸움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제 싸움 구경에 지칠 만큼 지쳤다. “그만 좀 싸우라”고 말리는 사람들끼리 또 싸우기 때문이다.

2006년의 목표, 아니 노무현 정권의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대결과 갈등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푸는 정치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저부터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겠습니다.” 2003년 2월 25일 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과연 내년에는 대통령이 모는 버스가 얌전히 달릴 수 있을까?

유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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