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근]근로자 ‘유리지갑’만 계속 쥐어짤건가

  • 입력 2005년 11월 2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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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정부 세입예산에서 근로소득세가 올해 예산 대비 26% 늘어나는 반면 자영업자들이 주로 부담하는 종합소득세는 오히려 7.6% 줄어드는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근로자 수가 늘어나고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근로소득세가 자연적으로 늘어난 것이지 인위적으로 징수를 강화한 게 아니라며 해명하고 나섰다.

근로자의 세 부담에 관한 논란은 정부가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논란의 시발점이 된 예산 대비 근로소득세 초과징수액은 최근 4년 동안만도 4조4756억 원에 이른다. 올해도 전체 세수는 4조6000억 원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독 근로소득세는 1조1564억 원이 더 걷힐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가 ‘유리지갑’이라 불리는 근로자를 쥐어짜서 곳간을 채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돼 있는 상황이다.

근로소득세 경감 정책이 생색내기에 불과했던 게 근로자 세 부담이 과중하게 된 근본 원인이다. 근로소득세를 경감한다면서 주로 소득공제 확대 정책을 써왔는데 소득공제는 공제요건에 해당돼야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세 감면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교육비 공제는 학생이 있는 근로자만, 장애인 공제는 장애인이 있는 근로자라야 공제 혜택을 받는다.

물가를 감안하지 않은 명목소득에 높은 세율을 적용한 것도 근로소득세가 늘어난 이유다. 정부는 과세표준 구간을 1996년에 상향 조정한 뒤 현재까지 9년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96년부터 올 8월까지 명목임금 상승률은 68.5%다. 그러나 소비자물가를 감안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34.2%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명목소득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 왔다. 1996년에 과세표준이 3000만 원이라서 20%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던 근로자가 2005년에 연봉이 올라 과세표준이 5000만 원이 된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물가 상승을 감안해 과세표준 구간을 상향 조정하면 18%의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9년씩이나 과세표준 구간을 그대로 두면 27%의 높은 세율이 적용돼 세금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소득세 최고세율(35%)이 적용된 근로자가 1996년 7000명(0.1%)에서 2003년 3만1000명(0.5%)으로 대폭 늘어난 것도 과세표준 구간을 장기간 그대로 뒀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근로자가 낼 세금에서 차감해 주는 근로소득공제는 연 50만 원으로 제한하면서 자영업자가 낼 세금에서 차감해 주는 세액공제는 한도액을 두지 않고 있다. 근로자의 소득이 유리알처럼 드러나는 데다 물가상승, 연봉제 실시 등 경제상황 변화마저 세금 계산에 반영하지 않으면 근로자의 ‘유리지갑’은 더 얇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가 근로자의 세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을 무시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정부는 근로소득세가 과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근로자에게 적정한 세금을 매기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동안 미뤄온 과세표준 구간 상향 조정, 물가연동 소득세제 도입, 근로소득 세액공제 확대 등이 그것이다. 더불어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 세 부담 불공평을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박상근 명지전문대 교수·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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