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청계천의 올덴버그

입력 2005-11-17 03:07수정 2009-10-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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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향수권(享受權)’이란 말이 유행이다. 누구나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지방에서도 서울처럼 수준 높은 문화를 접할 수 있어야 하고, 공연장과 전시장의 문턱도 낮아져야 한다. 청계천과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몰리는 인파는 문화와 여가생활 욕구가 눈에 띄게 높아졌음을 확인해 준다. ‘민심(民心) 읽기’에 빠른 자치단체장들은 문화시설을 세우고 행사를 유치하는 데 열성이다. ‘문화 강국’ 프랑스에선 이런 흐름을 ‘문화 민주화’라는 말로 치장한다.

▷청계천 초입의 청계광장에 미국의 팝 아트 미술가 클라에스 올덴버그 씨의 작품이 세워진다는 소식이다. 팝 아트는 1960년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된 현대미술의 한 장르다. 팝(pop)이란 말 그대로 대중에 친근한 미술을 추구한다. 메릴린 먼로의 얼굴을 수십 개 늘어놓은 앤디 워홀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런 걸 미술품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 속엔 매스미디어사회, 대량소비사회의 단면과 이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다.

▷76세인 올덴버그 씨는 아이스크림콘이나 톱, 햄버거, 빨래집게 등 일상적인 사물을 크게 확대한 야외 조각을 선보여 왔다. 아이스크림콘 작품은 빌딩 꼭대기에 뒤집힌 채로 놓여 행인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근엄한 표정으로 바라봐야 하는 난해한 미술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 즐기는 미술을 시도한 것이다. 고도의 철학과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기존 미술에 대한 반기(反旗)다.

▷그의 작품은 세계 여러 곳에 세워져 도시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은 청계천 복원의 역사성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논쟁이야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지만 일각에서 올덴버그 씨를 산업자본주의 전파의 첨병으로 모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미술과 대중을 가깝게 만든 ‘문화 민주화’의 공로자가 아닐까. 그가 청계천에 어떤 작품을 세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청계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문화적 여유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값지지 않겠는가.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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