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97>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0월 27일 03시 04분


코멘트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오는 길에 군량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무어라? 군량을 빼앗겼다고? 그 장수가 누구냐? 어느 미련한 물건이 군량을 뺏기고도 살기를 바라고 돌아왔느냐?”

패왕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금세라도 칼집에서 뽑을 듯 칼자루를 잡았다. 치속도위가 흙빛이 된 얼굴로 바닥에 엎드리며 울먹였다.

“제 부관(副官)인데 그는 벌써 죽었습니다. 지난번에도 군량을 빼앗겼다기에 이번에는 호위까지 500명을 붙이게 하였으나 도중에 모진 도적 떼를 만나 그리되고 말았습니다.”

“도적 떼라니? 어떤 간 큰 도적놈이 감히 과인의 군량을 넘본단 말이냐? 그게 누구라더냐?”

“살아 돌아온 자가 없어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양(梁)땅에서 그리되었다는 소문이니 팽월인 듯합니다. 팽월이 아니고는 그럴만한 세력이 없습니다.”

거기까지 듣고 나니 패왕도 짚이는 데가 있었다. 지난번에 팽월을 잡지 못하고 돌아온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기어이 뒤탈을 본 셈이었다.

“그 팽가 놈이 또…. 좋다. 모든 장수들을 불러라. 내 당장 달려가 이번에는 반드시 그 늙은 도적놈의 목을 베겠다!”

성난 패왕이 그 자리에서 모든 장수들을 불러 모으게 하고 팽월을 잡으러 떠날 의논을 했다. 이번에도 계포가 나서서 패왕을 말렸다.

“한왕을 버려두고 이곳을 떠나서는 아니 됩니다. 팽월이 그렇게 날뛰는 것도 한왕이 부추긴 탓이니, 모든 우환의 뿌리는 한왕에게 있습니다. 여기서 한왕과 결판을 지은 뒤에 팽월을 잡으러 가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팽월에게 달려가는 것은 한왕의 엉큼한 속임수에 놀아나는 것밖에 안 됩니다. 팽월이 다시 멀리 달아나 숨어버리면 대왕만 고단해질 뿐입니다.”

“당장 군사들을 먹일 곡식이 없는데 어떻게 여기서 한왕을 이긴단 말인가?”

“신이 팽성으로 내려가 군량을 거두어 오겠습니다. 우선 급한 100곡(斛)은 신이 팽성에 이르는 대로 수레와 말에 실어 샛길로 보내면 열흘 안에 이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군량이 떨어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 대왕께서는 반드시 여기 남으셔서 먼저 유방을 사로잡도록 하십시오.”

계포가 그렇게 나오자 항왕도 무턱대고 팽월을 치러 떠나기를 고집할 수만은 없었다. 간다고 해서 반드시 팽월을 잡는다는 보장도 없으려니와 일껏 산봉우리에 가둬 논 한왕 유방을 다시 놓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계포라면 어김없이 군량을 댈 것 같았고, 군량만 있으면 어떻게 한왕과 결판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슬며시 마음을 돌리고 계포의 말을 따르려고 하는데, 다시 한 부장(部將)이 나서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를 했다.

“대왕, 유방의 아비어미와 그 계집은 어디에 쓰시려는 겁니까? 지난번 산동에서 잡아들인 뒤로 군중(軍中)에 끌고 다닌 지 벌써 두 해째입니다. 왜 그들을 내세워 유방을 불러내지 않으십니까?”

그 말을 듣자 패왕은 문득 눈앞이 훤해지는 것 같았다. 군량 걱정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왕을 불러낼 방도까지 듣게 된 까닭이었다. 그 자리에서 계포에게 300기를 딸려주며 팽성으로 가게 하는 한편, 한왕의 부모인 태공 내외와 그 정실 여후(呂后)를 끌어오게 했다.

글 이문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