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뻥 뚫린 식탁安保

  • 입력 2005년 10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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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참 죽이기 쉬워요.”(놀라는 사람들)

“한 끼라도 김치를 안 주면 못 살거든요.”

언젠가 단체관광단에 끼어 외국을 여행했을 때 현지 가이드가 한 말이다.

이번 국정감사의 최대 히트작은 ‘중국산 김치 납 검출’ 파동이 아닐까 한다. 평범한 국민에게는 도청 관련 X파일이나 삼성그룹의 기업지배구조보다 훨씬 관심 있는 일이 음식의 안전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음식이란 게 정말로 ‘한국인의 생명을 끊을 수도 있는’ 김치임에야.

7월 중국산 양식 어종에서 검출된 말라카이트그린이 이번에는 국내산 송어와 향어에서도 나오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말라카이트그린은 쉽게 말해 모기향의 재료다. 모기향이 녹색인 까닭이 바로 말라카이트그린 때문이다.

말라카이트그린 사태에 대한 그간의 대응 과정을 보면 우리 정부가 도대체 식품안전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중국산 어류에서 말라카이트그린이 문제가 된 지 3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그것도 일부 양식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만 발표했다. 양식장마다의 검출량은 공개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먹어도 좋다는 것인지 안 된다는 것인지 설명도 없다.

먹을거리의 안전성은 모든 이의 관심사다. 모두가 맛나고 비싼 음식을 먹지는 못해도 가난하건 부자건 최소한 안전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엄격한 식품 기준을 정하고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일’을 엄벌하고 있다.

요즘 입만 열만 ‘세계화’를 떠들지만 우리 식탁만큼 세계화된 것은 없다. 도라지 고사리 등 나물과 생선류 양념류, 쇠고기는 물론 치킨과 햄버거의 재료까지 전부 수입식품이다. 순수 국내산은 쌀 정도가 고작이다.

이미 식탁은 글로벌화됐지만 식품안전 관리수준은 글로벌 기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무엇보다 식품안전 사고가 터질 때마다 책임지는 정부 부처가 없다. 중국산 양식 어류에서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됐다는 외신이 들어왔을 때도 해양수산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식약청이 뒤늦게 검사했다. 그러니 문제를 발견해도 배 속에 들어간 다음이다.

보건 당국이 늘 뒷북을 치는 주요한 원인은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외신 아니면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사실을 확인한다.

그렇다고 식약청 기능을 당장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라고 할 수는 없다. FDA는 직원만 1만446명(2005년 추정)에 식품과 의약품 안전성 검사에 쓰는 비용이 연간 1조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우리는 감당할 수가 없다. 하지만 FDA를 최고의 기구로 만드는 것은 예산보다는 정보 수집 능력이다. 어느 곳에서 폐기물 사고가 터졌고, 어떤 나라에서 무슨 농약을 쓰는지 모니터를 잘하고 있기 때문에 통관 시에 일일이 검사를 하지 않아도 수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먹을거리를 수입하고 있지만 상하이(上海)에 식약관(食藥官) 한 명만 달랑 파견해 놓고 있을 뿐이다. 식품안전 관련 정보 또한 국가안보 관련 정보만큼 국익과 국민에게 긴요하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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