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訴請은 笑聽?

  • 입력 2005년 10월 7일 03시 06분


코멘트
소청 심사를 오랫동안 해 본 공무원들은 ‘소청(訴請)은 소청(笑聽)’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비리 공무원의 소속 기관에서 제출한 징계이유서를 읽어 보면 ‘나쁜 ×’이지만 막상 당사자 얘기를 들어 보면 동정심을 갖게 되고, 쓴웃음과 너털웃음이 나오게 된다는 것.

특히 순간의 실수로 평생 몸담아 온 공직에서 쫓겨나야 하는 파면이나 해임 처분을 받은 공무원의 절박한 사정과 하소연은 외면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리에 맞지 않는 변명이나 거짓말을 꾹 참고 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소청심사위원은 비리 당사자의 말만 들어주는 직책이 아니라 공정한 심판자다. 비리 당사자의 ‘정상(情狀)’을 참작해 징계사건을 처리하기로 한다면 참작할 만한 정상이 없는 공무원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성실하게 근무하지 않은 공무원이 어디 있겠으며 직장을 잃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반성하지 않을 공무원이 몇이나 되겠는가.

정상 참작의 기본 요소인 표창이나 공적이 있는 사람도 소청 청구인의 95%에 이른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소청심사위원회가 청구인의 징계를 경감해 준 비율은 올 상반기의 경우 48.7%나 된다.

하지만 지난해 징계 처분이 너무 무겁다며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공무원의 승소율은 6.2%에 그쳤다. 법원에 비해 소청심사위의 ‘제 식구 살리기’가 심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소청 심사에는 심사위원과 징계기관의 감사관, 비리 당사자가 참여한다. 소청 심사도 일종의 행정심판제도인 만큼 3자는 각각 판사와 검사, 변호사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공무원 신분인 만큼 법원의 재판만큼 객관적이고 엄정한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심사위원들은 공무원의 비리 때문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본 국민이 소청 심사 현장에 있는 것처럼 임해야 한다.

비리 당사자의 하소연만 들을 게 아니라 공무원의 본분을 벗어난 행동 때문에 가슴을 치고 억울해했을 민원인을 포함해 국민의 눈길과 목소리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종대 사회부 orion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