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윤종]‘도적같이 올 통일’ 태산같은 준비를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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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구세주가 올 날은 아무도 모르며 그날은 도적같이 닥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일인들에게 장벽 붕괴(1989년)와 통일(1990년)은 ‘도적같이’ 닥쳤다. 누구도 이렇게 갑자기 통일이 닥치리라고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독일인들은 기회를 움켜잡아 역사의 대업을 완수했다.

왜 갑자기 찾아왔을까. 독일 통일 15주년을 맞아 동서독 지역을 넘나들며 기자가 만난 시민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것은 위정자들의 계산이나 밀실 담합의 결과가 아닌, ‘민중(Das Volk)의 거대한 압력’이 둑을 무너뜨린 결과였기 때문이다.

한 서독 출신의 40대 남자는 기자가 ‘흡수 통합’ 운운하자 코웃음을 쳤다. “서독이 동독을 집어삼켰다고? 통일의 움직임을 주도한 것도, 통독의 걸림돌인 동독 체제를 뒤엎은 것도 바로 동독인이었다. 흡수라면 자발적으로 흡수된 것이다.”

투표를 통해 자기 손으로 통일을 결정했다는 것 때문에 독일인들은 역사에 겸허했다. 많은 시민이 ‘실업으로 고생했고 세금도 물었지만 우리 자신의 결정이었다’며 만족을 표했다. 경기 후퇴 등 악재에도 통일 자체를 폄훼하거나 옛 동(서)독인에게 반대하는 집단행동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한반도에 통일은 어떻게 닥칠 것인가. 가로막힌 인적 교류의 장벽에 작은 물꼬가 터진다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회가 닥치면 우리는 어떤 통일을 만들어 갈 것인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통일 한국이 선택할 정치 경제 사회 체제는 몇 사람의 계산이나 담합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양측 민중이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통일이라면, 통합 과정에서의 실망이 통일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 민족의 장래에 분단 이상의 위험한 독이 될 수도 있다.

통일 독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취재를 마치며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밀물처럼 넘쳐들 ‘인(人)의 물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피폐한 땅에 어떤 경제적 질서를 심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100가지의 ‘상대방 비위 맞추기’보다 중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성서는 다른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는 등불을 들고 깨어 기다리라.’<베를린에서>

유윤종 국제부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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