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달라진 북한, 달라지지 않은 북한

  • 입력 2005년 8월 3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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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제4차 6자회담이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北京)에선 “북한이 달라졌다”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지난 주말 북한이 미국 대표단을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한 것은 북한의 대화 의지를 보여 주는 제스처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과 머리를 맞대는 미국 대표단도 회담의 쟁점에 대한 이견은 인정하지만 북한의 협상 태도에 관해선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1∼3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예고 없이 해온 ‘심야 길거리 기자회견’도 이번엔 자취를 감췄다. 과거에 북한 대표단은 한밤에 베이징의 북한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을 일방적으로 비난한 뒤 질문도 받지 않고 사라지곤 했다. 이후 회담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음은 물론이다.

북한이 각종 국제회담에서 일방적인 주장만 강도 높게 늘어놓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길거리 대신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토해낸다고 한다.

이번 회담이 과거보다 2배 이상 길어지고 있고 핵심 쟁점에 관한 북-미의 인식차가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회담 전망이 비관적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외형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장은 내용 면에선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아쉽게도 북한은 1∼3차 회담에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미국의 대한(對韓) 핵우산 제공을 이번에 느닷없이 들고 나와 협상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스스로 탈퇴하고 핵 개발 금지 약속을 수차례 어긴 북한이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주장하는 것 또한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찾겠다는 발상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이 ‘경수로 대신 전력을 주겠다’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북한이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는 것도 ‘끝없이 버티면서 챙기려고만 하는’ 과거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6자회담은 북한이 국제기준에 맞춰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차제에 북한이 외형적으로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협상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베이징에서>

윤종구 정치부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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