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1년 英여왕 부군 필립公 출생

  • 입력 2005년 6월 10일 03시 08분


코멘트
영국 국왕 조지6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공주는 키 크고 잘생긴 해군장교 필립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특유의 활달하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1947년 11월 결혼에 성공한다. 1921년 6월 10일에 태어난 필립이 스물여섯, 엘리자베스 공주가 스물한 살 때였다.

필립은 5년 뒤 ‘여왕의 남편’이 된다. 말이 좋아 여왕 남편이지 영국에서도 아내는 남편이 출세하면 덩달아 출세할 수 있지만 출세한 아내를 둔 남편은 그 반대가 되기 십상이다. 재능이나 노력이 오히려 평가 절하될 수도 있고, 출세한 여자가 희귀한 시절 그 여자의 남편이란 자리 역시 희귀하니 얼마나 외로운 일이겠는가.

더구나 필립공은 이듬해 6월 열린 아내의 대관식이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바람에 왕실이라는 억압에 유명세까지 타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았을 것이다.

일례로 1999년 한국을 방문했던 그가 “왕실에 들어와 마구간 하나도 내 뜻대로 고치지 못했다”고 하자 언론에서는 ‘왕실의 엄격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도 했고 ‘여왕 아내와 사는 남편의 초라한 지위를 토로한 것’이라고도 했다.

필립공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바람을 피웠다’는 구설이 끊임없이 나돌았지만 결국 그의 사생활을 추적한 한 전기 작가에 의해 ‘순결’(?)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것은 “결혼 이후 계속 감시자가 따라붙었는데 어떻게 바람을 피우겠느냐”는 본인의 불평처럼 ‘자의 반 타의 반’ 성격이 짙다.

30명의 손자 손녀를 둔 필립공 부부는 3년 뒤면 결혼 60년을 맞는다. 이들의 안정된 부부생활은 모든 영국인의 귀감이지만 특히 어려운 역할을 잘 수행해낸 필립공에게 영국인들은 깊은 애정을 보낸다.

필립공은 여왕 남편이란 역할 수행에는 성공했을지라도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맏아들 찰스 왕세자가 바람을 피워 결국 이혼까지 하고 그 와중에 며느리가 비명횡사했으니 이보다 더한 고통이 어디 있었겠는가. 더구나 왕실의 그림자로 살아오면서 이 꼴 저 꼴 다 본 그로서는 아들의 일탈이 더욱 더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는 며느리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적대적이었다고 알려졌지만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후에 왕실 집사가 공개한 편지들에서 ‘애정이 넘치는 시아버지’였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결국 결혼이 파경으로 치닫자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시아버지 역시 자기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화를 냈지만 “(그래도) 그의 정직함만은 존경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