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김진재 前국회의원 “지진공부하며 은퇴 공허감 잊어”

  • 입력 2005년 3월 8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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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를 떠난 김진재 한국면진·제진협회장은 “꾸준히 준비하면 은퇴한 사람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찾아 온다”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정계를 떠난 김진재 한국면진·제진협회장은 “꾸준히 준비하면 은퇴한 사람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찾아 온다”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은퇴 이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고민거리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과거의 ‘현역시절’에 집착해 새로운 보람을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전직 국회의원들의 경우는 그 강박감이 일반인보다 훨씬 심하다. 지난해 17대 총선에서 6선 고지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해 정계에서 은퇴한 김진재(金鎭載·62) 전 한나라당 의원은 이를 현명하게 극복한 사람에 속한다.》

“현역시절에 연연할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그러면서도 ‘내가 아직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현역에서 물러난 데 따른 공허함을 메울 수 있습니다.”

정치 대신 그가 붙잡은 일은 면진(免震)·제진(制振).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는 생활화된 분야로,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적용하는 일을 말한다.

‘면진’은 고무판과 강판을 번갈아 여러 겹 댄 뒤 가열시킨 특수 구조물을 건물의 주기둥 아래 부분에 주춧돌처럼 넣어 지진에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진동을 제압한다는 개념의 ‘제진’은 기존 건물에 보강재를 대 지진에도 버티도록 하는 기술.

원래 공학도(한양대 산업공학과 석사)였으며, 방진(防振) 설비와도 관련이 있는 기업(동일고무벨트㈜)을 경영했던 경제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린 것. 지난해 9월 8일 한국면진·제진협회의 창립 회장을 맡았고, 10월부터는 면진 기술의 본고장인 일본 게이오(慶應)대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흔히들 정치인이 연수를 간다고 하면 재기를 위한 휴식이나 도피성 외유를 연상하지만 김 전 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나라도 경북 경주시 부근에서 충남 홍성군까지 지진대(帶)가 있습니다. 지난해 5월 29일에는 경북 울진에서 리히터 5.2 규모의 강진이 발생한 적도 있습니다. 지진이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라는 거죠. 그러나 지진에 대한 대비는 거의 없습니다. 내진(耐震) 설계를 한 건물도 거의 없고요. 지진이 닥치면 어떤 피해를 겪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당장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여줄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람을 찾는다”며 “여전히 국가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크다”고 말한다.

그가 면진·제진협회장을 맡아 바로 시작한 일은 충남 서산시의 ‘지진 피해 예방 건축 시범관’ 건설. 주택공사가 짓는 아파트의 부속건물을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특수공법으로 세우는 일이다. 8월 완공 예정인 이 시범관은 기둥이 ‘고무강판 주춧돌’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중장비를 동원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건물을 흔들어 대는 시범도 보일 계획이다.

지진 대비의 필요성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현역 때보다 오히려 밝게 보인다는 기자의 덕담에 그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과감하게 물러난 덕분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실제로 정치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이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어수선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2선으로 물러난 사람들도 조용히 내실을 다지다 보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쓰일 데가 있을 겁니다.”

그는 지진을 연구하다 보니 인생과 비슷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 가지 예화.

“1995년 일본의 고베(神戶) 대지진은 땅이 옆으로 흔들리는 일반적인 지진이 아니라 아래위로 흔들리는 직하지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일본은 직하지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답니다. 유일하게 도쿄대의 한 교수가 고베지진 3년 전에 ‘직하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모두에게 비웃음만 샀다는 거죠. 그러나 3년도 안 돼 상황은 역전됐고 그 교수는 지금도 이 분야 최고 권위자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예측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낭패를 볼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언젠가는 보상을 받는다는 것.

그는 “물러나 있는 사람도 미래를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며 “준비하는 사람에겐 미래가 찾아오게 돼 있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김진재 회장은▼

△1943년 부산 출생

△1966년 한양대 산업공학과 졸업

△1965년 동일고무벨트 입사

△1969년 한국공업경영학회 이사

△1974년 세일화학 사장

△1981년 동일고무벨트 사장

△11, 13, 14, 15, 16대 국회의원

△2002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4년 사단법인 한국면진·제진협회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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