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3년차 증후군

  • 입력 2005년 1월 25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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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원내 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은 1995년에 여당인 민주자유당에서 떨어져 나와 새살림을 차렸다. 새천년민주당은 2000년에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민주당의 합당 형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나라당 전신인 민주자유당은 1990년에 여당인 민주정의당 주도의 3당 합당으로 탄생했다. 공교롭게도 민주노동당 역시 2000년에 출범했다. 다시 꺾어지는 해인 2005년엔 정치권이 또 무슨 조화(造化)를 부릴까. 벌써 그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10년 된 정당도 없는 나라▼

작년 총선에서 처음 원내에 진입한 민노당을 논외로 한다면 몇 가지 사실을 짚어 볼 수 있다. 첫째, 기성 정당은 모두 분당이나 합당으로 급조된, 정략적인 이합집산의 산물이었다. 민주당과 갈라선, 신생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예외가 아니다. 둘째, 정치권 재편의 중심축은 대부분 여당이었다. 정치판을 뒤흔드는 완력은 아무래도 권력을 쥔 여당이 세기 때문이다.

셋째, 그때마다 개헌론이 불거져 촉매 역할을 해 왔다. 민생과는 무관한 권력구조개편론은 이악스러운 권력투쟁을 헌법 논쟁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넷째, 현재 한국에는 만 10년 된 원내 정당조차 하나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침을 튀기며 10년 후의 미래를 얘기해도 썩 믿음을 주지 못한다. 다섯째, 5년 주기(週期)의 ‘3년차 증후군’이다. 1987년 이후 꺾어지는 해는 역대 정권의 집권 3년차였다. 이 같은 주기는 단임제 대통령의 5년 임기와 연동돼 있다.

어느 정권이든 3년차가 되면 대개 임기 내 치적(治績)을 의식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신출내기나 얼치기 티를 벗고 졸업 후 진로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깊어지는 대학 3년생의 부쩍 의젓해진 모습을 연상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 시절엔 말수도 줄고 몸가짐도 조심스러워진다. 대학 3학년이 돼야 영어로 ‘주니어’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지방자치제 실시 합의,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원년(元年)’ 선언,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이 바로 집권 3년차에 내놓은 작품이다. 막힌 정국의 돌파구를 뚫고 꼬인 국정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노력 자체야 결과로 평가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탈선이다. 의도대로 안 되면 힘으로라도 밀어붙이려고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하는 게 그 전형이다.

권력구조개편론은 으레 정계개편론과 동전의 앞뒷면을 이룬다. 권력구조개편론은 차기(次期)에 대한 야심을 품은 여권 인사들이 슬그머니 운을 떼고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야권 인사들이 짐짓 호응하는 식으로 떠올랐다가 여론이 외면하면 가라앉기를 반복하면서 정치권을 끊임없이 요동치게 했다. 17년 된 현행 헌법에 대한 개헌론의 역사가 15년이나 된다.

아무튼 올 초 여권이 보여 준 열린 자세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기대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책임 있는 여권 인사들의 발언만 놓고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들의 서슬이 너무 갑자기 누그러진 것 같아 은근히 걱정될 정도다. 말이 단 집은 장맛이 쓰다 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마음에 걸리는 점이 몇 대목 있다.

▼말은 단데 장맛도 달지…▼

우선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입각 권유로 빚어진 합당설 파문에 신경이 쓰인다. 아무리 ‘선의(善意)’라 해도 신중하지 못했다. 경제에 ‘다걸기(올인)’하겠다는 여권 일각에서 개헌론이 모락모락 이는 것도 박자가 맞지 않는다. 개헌론에 일리가 없지 않고 개헌을 한다면 2007년이 적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공론화할 시점이 아니다. 현 정권은 임기 후반에 대한 불안감과 차기에 대한 초조감 때문에 ‘철들자 망령 난’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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