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6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21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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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주가(周苛)와 기신(紀信)이 수백 패잔병을 이끌고 한왕을 찾아온 것도 우현(虞縣)에서였다. 유가(儒家)의 부류라고 은근히 얕보고 놀리기는 해도 그 며칠 한왕은 은근히 애태우며 그들을 찾아 왔다. 예절과 법도에 밝은 그들이라 언제나 가까이 두고 부리는 동안에 정이 든 데다, 무엇보다도 고향 패현에서부터 따라와 몇 년째 고락을 함께해 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주가와 기신이 무사히 자신을 찾아들자 한왕은 반가운 나머지 그날도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전에 그러했듯 또 유가의 가르침을 놀림감으로 삼았다.

“과인이 듣기로 유자(儒者)들의 가르침에는, 임금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견위치명·見危致命)하였는데 어사대부(御使大夫)와 중위(中尉)는 어찌된 거요? 위태로운 임금을 수수 물가에 팽개치고 홀로 달아나도 좋다는 가르침이 유가 경전에 달리 있소?”

그러면서 놀리다가 주가와 기신이 얼굴이 시뻘게져 고개를 수그리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우스갯소리를 거두었다.

그사이 우현에 자리 잡은 한왕이 거느린 군사는 그럭저럭 5만을 넘어서고 팽성 인근의 싸움에서 흩어진 패현의 맹장들도 태반이 다시 모여들었다. 번쾌와 주발이 아직 한왕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나 그들도 각기 양(梁) 땅과 곡우(曲遇) 근처에서 건재해 있다는 소문은 이미 들어와 있었다. 그 바람에 한군의 사기는 크게 살아났으나 반드시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항왕이 크게 추격군을 일으켜 소성(蕭城)에서 수수를 건넜다고 합니다. 제(齊)나라에서 돌아온 군사를 보태 10만 대군으로 출발했는데, 벌써 율현(栗縣)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풍문입니다. 이번에는 대왕을 끝까지 뒤쫓아 아예 뿌리를 뽑을 작정인 듯합니다.”

해질 무렵 갑자기 우현의 한군 진채로 그런 급보가 날아들었다. 율현이라면 우현에서는 아직도 100리 길이 넘었으나 그런 소식을 듣자 한군은 아래위가 한가지로 벌벌 떨었다. 초나라 군사가 배나 되고, 그것도 항왕이 몸소 거느리고 온다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3만 군으로 사흘에 1000리를 달려와 56만 한군을 박살낸 항왕이 아닌가. 더구나 한군으로서는 끔찍할 수밖에 없는 그 경험은 모두가 열흘 안쪽의 일이었다.

놀란 한왕이 얼른 진채를 뽑게 해 다시 밤길을 재촉해 서쪽으로 내달았다. 그런데 날이 훤히 밝아올 무렵까지 달아난 한군이 우현과 외황(外黃) 중간쯤 되는 곳에서 잠시 진채를 내리고 쉬려는데 또다시 놀라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먼저 달아나 외황 부근을 헤매던 위왕(魏王) 표(豹)의 군사 여남은 명이 한군 진채를 찾아와 보고 들은 대로 알렸다.

“지난번 한나라에 항복했던 초나라 장수 왕무(王武)가 다시 한을 배반하였습니다. 힘으로 외황을 차지하여 항왕이 밀고 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항복한 장수 정거(程遽)도 연(燕) 땅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며, 연지(衍氏)의 주천후(柱天侯)도 한나라의 다스림에 항거하여 일어났다 합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절로 눕는다던가. 한군의 위세가 좋을 때는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항복해 오던 적장과 토호(土豪)들이 팽성의 참패를 듣고는 저마다 무기를 들고 맞서오고 있었다. 특히 외황의 왕무는 서쪽으로 물러나는 한군의 앞길을 정면으로 막고 있는 격이라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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