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상인]국회 윤리특위 위상 높일때다

  • 입력 2005년 1월 7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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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는 산하에 모두 19개의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 가운데 서열(?)이 제일 낮을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이나 언론으로부터도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윤리특별위원회다. 바로 그 위원회가 6일 자신의 실체를 모처럼 세상에 알렸다. 계기는 동료 국회의원들에 대한 징계 결정이었다. 뉴스의 초점은 결코 징계의 수위나 징계 의원의 수 등이 아니었다. 이목을 끈 이유는 1991년에 설치된 윤리특위가 사상 처음으로 징계 조치를 내렸다는 사실이 훨씬 더 컸다.

윤리특위의 존재 이유는 국회의원의 윤리의식 제고와 자율적 위상 정립을 통해 국회 스스로의 권위를 유지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회상을 정립하자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14대부터 16대 국회까지 지난 12년 동안 60여 건의 징계 발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의 징계 처분도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17대 이전의 국회가 고도의 윤리성을 구가했기 때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여야를 초월한 ‘제 식구 감싸기’의 결과였을 뿐이다. 윤리특위 자체의 반윤리성만 드러냈던 것이다.

▼14代설치후 ‘첫 징계’ 의미 커▼

17대 국회에 들어와 윤리특위가 마침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여기서 그것이 국회 전체 차원의 자정(自淨)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유례없는 혈투로 일관한 17대 국회 나름의 상흔(傷痕)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훗날의 몫으로 돌리자. 또한 이번에 결정된 징계의 종류가 가장 경미한 수준이라는 ‘공개회의에서의 경고’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다. ‘첫술에 배부르기 어렵다’고, 아니면 ‘시작이 반’이라고 자위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직 국회 본회의 의결을 남겨놓고 있긴 하나 요즘과 같은 ‘공명선거’ 분위기라면 윤리특위의 경고 사실이 유권자들에게 공개되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게 미치는 징계 효과는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징계의 형평성이나 정략성에 관련된 문제다. 일부 해당 의원들이 이번 윤리특위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많은 국민 또한 윤리특위의 ‘이례적 업적’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회의 때마다 막말과 폭력이 난무하고, 걸핏하면 회의장이 강제 점거 및 불법 농성의 무대로 전락하던 것이 17대 국회의 총체적 풍경이라면 개별 의원들의 윤리와 품위를 새삼스레 가리고 벌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 혹은 난센스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국회 내 다른 위원회의 경우에서처럼 윤리특위 역시 위원 선임을 교섭단체별로 안배할 경우 정치적 이해와 윤리적 판정 사이의 애매한 구조적 경계는 쉽게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정말로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기 바란다. 이는 윤리특위가 2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이른바 ‘2005년 윤리선언’을 주도하는 것 정도로 해결될 사항이 결코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야유나 비하, 부정 등 소위 ‘반(反)의회적 발언’의 자제가 선언문 한 장 달랑 낭독하는 것을 통해 보장된다면 왜 국민이 국회를 걱정하며 살겠는가.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윤리특위 강화책이다.

▼‘上院’같은 역할 맡긴다면…▼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윤리특위 표결에서만큼은 의원별 크로스보팅이 당론에 선행하는 묵시적 관례를 확립하면 어떨까. 또는 윤리특위만큼은 당적(黨籍)이 아니라 선수(選數)를 기준으로 구성함으로써 일종의 상원(上院) 내지 상급위원회 위상을 확보하면 어떨까. 혹은 윤리특위 활동에서만큼은 당분간 외부 전문가그룹의 참여를 제도화하면 어떨까. 만약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회 내에서 발언할 때나 TV 토론 등에 임할 때 최소한 서로 ‘존경’한다는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어떨까. 존경한다고 해 놓고 서로 싸우는 자들에겐 윤리라는 말조차 아깝기 때문이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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