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

  • 입력 2004년 9월 10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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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리처드 루빈스타인 지음 유원기 옮김/461쪽 2만원 민음사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2000년 서양철학사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에 대해 저자 리처드 루빈스타인은 이 책을 통해 “그건 아리스토텔레스가 1000년 동안 서구 문명에서 잊혀졌기 때문이다”고 반박하는 듯하다.

이 책은 서구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어떻게 사라졌고 어떻게 재발견됐으며 이후 서구의 지성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역사적으로 보여준다. 제목에서 엿보이듯 저자는 중세 이후 서양철학과 신학, 그리고 과학은 상당부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빚지고 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종 1000년’은 초기 기독교 사상을 정리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시작됐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물질적인 세계와 인간의 이성에 초점을 맞춘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초월적인 세계로 이데아를 상정한 플라톤 철학을 로마제국의 종교인 기독교 신학에 적용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잊혀졌다.

중세 서구 문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이성과 신앙의 조화와 통합의 길을 모색했다. 그림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1510년). 문을 나오는 2명 가운데 왼쪽이 플라톤, 오른쪽이 아리스토텔레스다. -사진제공 민음사

이후 서로마제국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흔적은 보이티우스가 번역한 ‘오르가논’ 등으로 겨우 남았을 뿐이다. 동로마제국에서는 교리 논쟁에서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며 그의 이성 개념을 이용한 네스토리우스파가 쫓겨나면서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취를 감췄다.

서구 문명에서 그의 실종이 아랍 세계에서는 보물의 발견이었다.

7세기경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의 무슬림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과학 신학 관련 저술들을 아랍어 시리아어 이집트어로 활발하게 번역했다. 무슬림 철학자인 아비세나(이븐 시나)와 아베로에스(이븐 루슈드)는 11∼12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철학과 논리학을 받아들였다.

서구 문명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재발견한 것은 중세가 절정에 이른 12세기 초, 십자군이 스페인을 무슬림에게서 재탈환했을 때 그들을 뒤따라 온 성직자들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생물학 물리학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거의 모든 저작이 아랍어로 번역됐고 주석서까지 방대하게 저술된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구의 현명한 일부 성직자들은 그 저술들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기독교 무슬림 유대인 학자들이 종파를 떠나 참여했다.

‘자연은 신이 아닌 나름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그 법칙을 인간은 이성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기독교 교리와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문화적 삶의 여건이 크게 변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내세보다는 현실 세계로 바뀌고 지식에 대한 열망이 커지자 일부 기독교 사상가들은 이성이 신앙의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이후 300여년간 서구 사상의 불꽃 튀는 주제는 이성과 신앙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였다. 급진적 이성의 도입에 두려움을 느낀 몇몇 성직자들이 잠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금했지만 서구의 대학에서 그의 저술은 필독서가 된 지 오래였다.

저자는 서구 기독교 세력이 무슬림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울 때의 상황이 현재 비(非)서구 사회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본다. 당시 서구문명이 우월한 무슬림문명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최고의 사상을 받아들이길 원했다면, 지금 비서구 사회도 서구에 대해 마찬가지 심정이라는 것이다. 원제 ‘Aristotle's Children:How Christians, Muslims, and Jews Rediscovered Ancient Wisdom and Illuminated the Dark Ages’ (2003년).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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