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513년9월25일: 바스코 발보아, 태평양 발견

  • 입력 2004년 9월 10일 11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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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의 감시자가

시계(視界) 안에 새 유성이 헤엄침을 본 듯,

용감한 코르테스가 독수리의 눈으로

태평양을 응시하듯. 말없이 다리엔의 한 봉우리에서.

<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보았을 때' 중에서>

영국의 시인 키츠는 서양인들이 처음 태평양을 보았을 때 감회를 이렇게 노래했다. 시에서 '코르테스'는 1513년 9월25일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태평양을 발견한 스페인 태생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를 이름이다.

이 낭만파 시인의 눈에 펼쳐진 태평양은 이름 그대로 <이때껏 본 적이 없는, 순수한 고요의 지경(地境)>이었을 것이며, 마치 천체의 감시자가 <시계 안에 새 유성이 헤엄침을 본> 듯 했으리라. 그러나 탐욕에 절은 탐험가 발보아가 <독수리의 눈>을 번득이며 실제 보았던 것은, 애타게 찾고 있던 전설 속의 황금의 땅, 바로 '엘도라도'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동시대인이었던 바스코 발보아. 그는 탐험가로 역사에 기록돼 그 이름을 파나마 해협의 '발보아항'에 남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밥이나 축내는 일개 건달에 불과했다.

발보아는 1500년 지금의 콜롬비아 연안을 탐험하는 항해선단에 끼어 이스파니올라(현재의 아이티) 에 정착했으나 방탕한 생활로 빚더미에 올라서게 되자 엔씨소가 이끄는 선단의 사과궤짝 속에 몰래 숨어든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오늘날 다리엔으로 알려진 곳에서 엔씨소와 함께 식민지를 개척하게 되는데, 그와 반목이 생기자 현지의 원주민들을 부추켜 반란을 일으킨다. 이 사실이 본국에 알려지자 위기의식을 느낀 발보아는 국왕의 환심을 사기위해 황금의 땅을 찾아 떠나게 되고, 마침내 다리엔 지협의 안데스 최정상에서 태평양을 목격하게 된다.

사냥개를 풀어 원주민들을 물어뜯어 죽게 했다는 발보아. 끝내는 반역죄와 원주민 학살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던 그가 태평양을 발견하기까지 과정은 독일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날카롭게 지적한 대로, 개인의 탐욕과 시대의 혼돈이 낳은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동양인의 시각에서 보면 지구 전 표면의 3분의1이 넘고, 전체 해양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태평양을 '발견'했다는 유럽인의 주장에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들의 역사에서 '광기와 우연' 못지않게 정복자의 '오만과 억지'를 읽게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칼라일의 발언이 오늘날 '오리엔탈리즘의 편견'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그 진의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정복자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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