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0년 프리드리히 니체 사망

  • 입력 2004년 8월 2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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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은 죽었다!”

니체의 이 한마디는 20세기 철학과 예술의 구호(口號)가 되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9세기 ‘생각의 다이너마이트’는 근대적 담론의 공간 안에서 탈(脫)근대적 사유의 씨앗을 뿌렸다. 서양철학을 그 근본에서 의심하고 해체했다. 서구 근대철학의 시발점이었던 ‘데카르트의 회의(懷疑)’를 회의했다.

그는 스스로 ‘부도덕한 인간’이 되었고 ‘악(惡)의 변호인’임을 자처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년)

니체는 그 ‘위험한 책’에서 신을 죽이고 ‘지상(地上)의 의의’를 설파한다. 피안(彼岸)이 아닌 차안(此岸)에서 약동하는 생 그 자체를 긍정했다.

신 대신 초인(超人)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원회귀를, 선(善)과 참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신의 축복 대신 존재의 심연을 거쳐서 웃는 ‘미래의 인간’을 노래했다.

니체는 “어떤 사람은 죽은 뒤 다시 태어난다”고 썼는데 이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카뮈…. 20세기의 유행이 된 실존주의는 니체의 정신세계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 리오타르….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끈 것은 프랑스의 ‘신(新)니체주의자’들이었다.

프로이트, 아들러, 융, 라캉…. 정신분석학은 니체에 경도됐다. “니체의 예감과 통찰은 힘들게 얻어낸 정신분석학적 연구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나는 애써 그의 책을 외면해야 했다.”(프로이트)

그는 반(反)유대주의와 국수주의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훗날 그의 이름은 그가 혐오했던 파시스트들에게 이용된다.

니체를 파시즘의 옹호자로 조작한 것은 반(反)유대주의자와 결혼했던 그의 누이 엘리자베트였다. 그녀는 니체의 작품에 무자비한 통제를 가했고, 그의 버려진 원고를 모아 ‘권력에의 의지’(1901년)를 출간하면서 내용을 비틀었다.

1889년 1월 니체는 이탈리아의 투린 광장에서 채찍질당하는 말의 목을 잡고 울부짖다 쓰러졌다. 정신착란이었다. 그는 10여년을 광인(狂人)으로 살다 죽는다.

‘생의 철학’의 기수 니체.

그를 일생 지킨 것은 지독한 병마(病魔)와 고독이었다.

그는 ‘생의 결핍’이 아니라 ‘생의 과잉’을 앓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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