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대단한 초등학생’

  • 입력 2004년 8월 5일 19시 07분


코멘트
익사사고는 여름의 불청객이다. 올해도 물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이 숨지는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익사사고는 한 사람의 불행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아버지마저 숨져 부자가 동시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번 주만 해도 포항에서 아버지(40)가 물에 빠진 아들(10)을 구한 뒤 탈진해 숨지고, 양양에서는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던 20대 청년이 실종됐다. 희생자들이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연쇄 익사로 커지지는 않았을 사고가 많아 안타깝다.

▷물놀이를 하러 갈 사람들은 사고 예방책으로 사흘 전 지리산에서 실종됐다 구조된 정희재군(10)의 사연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군은 41시간 동안 산속을 헤맸으나 어린아이답지 않게 침착한 행동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정군은 비가 쏟아지자 “젖은 몸으로 잠들면 체온이 떨어져 위험하다”는 아버지의 말을 생각하며 바위 밑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 정도의 침착함이라면 물에 빠지지도 않겠지만 남을 구하려다 불행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경찰을 웃기고 울린 이모군(12)도 ‘대단한 초등학생’이다. 3일 오후 ‘이학만이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경찰 2명을 살해하고 도주한 이씨를 체포할 결정적 단서였기 때문이다. 기동수사대 400여명과 특공대 20여명을 동원해 서울 돈암동의 아파트 2개 동을 밤새도록 뒤지고 나서 초등학생이 이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인터넷에 접속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들의 표정이 어땠을까.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을 지었을까, 초등학생이 경찰을 우롱하게 만든 정보화를 탓했을까.

▷정군도 이군도 보통 아이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특별한 행동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정군은 부모를 뿌듯하게 하고 어른들에게 까지 교훈을 주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정군은 몸과 마음이 부쩍 성장해 더욱 의젓해질 것이다. 이군의 행동에 놀란 어른들은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잘못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정군을 닮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