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위기설은 과장

  • 입력 2004년 7월 30일 17시 03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 석유 정제시설 중 일부.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 석유 정제시설 중 일부. 동아일보 자료사진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귄터 바루디오 지음 최은아·조우호·정항균 옮김/720쪽 2만5000원 뿌리와 이파리

석유는 현대 산업문명의 혈액이라는 숭앙과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자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저주를 함께 받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석유에 대한 대중적 오해를 불식하기 위한 백과사전적 저술이다. 석유 대체산업이 가장 발달한 독일의 석유기술자 출신으로서 만학(晩學)으로 법학, 문학, 역사학을 공부한 저자는 이를 제2의 계몽주의라고 부른다. 1차 계몽주의가 신학에 종속됐던 과학의 눈을 뜨게 해 줌으로써 불가사의한 존재였던 석유를 이용할 길을 터 줬다면, 2차 계몽주의는 석유에 대한 기술결정주의적 신화에서 벗어나 생명친화적 시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저자는 석유 카르텔이 독점이익의 산물이 아니라 석유산업 합리화의 결과이며 정작 석유산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카르텔이 아니라 산유국 정부라는 점을 지적한다. 다국적 기업보다 석유수입으로 독재와 부패에 물든 산유국 정부가 더 큰 문제라는 것. 석유 독점자본의 대표로 낙인찍힌 록펠러는 석유 운송과 판매를 혁신했고, 러시아 바쿠에 석유왕국을 세웠지만 노동자 착취로 악명을 떨친 루트비히 노벨(알프레드 노벨의 형)은 세계 최초로 유조선을 개발한 기술 혁신가였다.

저자는 1968년 로마클럽의 보고서 이래 끊이지 않는 석유 고갈에 대한 우려는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통계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원유량이나 박테리아를 이용해 광맥 속 원유를 완전히 채굴하는 등의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량 증대를 간과했다는 것. 세계기후정상회담의 심판대에 올랐던 이산화탄소도 인체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석유에 자연스럽게 비축된 이 가스를 인위적으로 분리할 때 일산화탄소, 메탄가스,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저자는 일깨운다.

저자가 지적하는 석유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석유를 연료와 에너지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석유는 이미 약학, 생화학, 유전자공학의 주원료다. 석유에 함유된 파라핀은 상처 치료 연고와 화장품 크림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된다. 심지어 원유에서 얻어지는 유독성 페놀은 인슐린 유지의 주요 약품으로 활용된다. 쿠웨이트 최대 석유회사 파르벤은 프랑스의 거대 제약회사 롱풀랑과 합병했다. 또 유럽의 최대 석유 콘체른인 셸과 영국 국영 석유회사(BP)는 ‘석유를 넘어선 시대’를 선언하며 세계 최대 대체에너지 개발 업체로 돌아섰다.

반면 석유를 에너지원으로만 바라보는 미국과 중동 산유국들이 전쟁의 주역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대에 석유는 방부제, 방수처리제, 치료제로 쓰였다. 태곳적 어둡고 깊은 땅 속에서 나온 석유가 인류에게 생명의 젖줄이 될지, 악마의 눈물이 될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린 셈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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