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김정수,“不惑 (불혹)”

  • 입력 2004년 5월 28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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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惑 (불혹)

- 김정수

못을 박다가

망치가 헐거워져 자꾸 빠지면

망치에

못을 박아야 한다

- 시집 ‘서랍 속의 사막’(리토피아) 중에서

일찍이 중학교 국어시간에, ‘공자 가로되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으며, 40세에 미혹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고말고요. 들은 풍월은 있되 아둔하여 ‘불혹’인지 ‘물혹’인지 크게 ‘미혹’하던 차에 이제야 그 뜻을 옳게 알겠네요.

세상 옹벽에 꽝꽝 망치질만 대구 할 게 아니라 제 헐거운 망치자루 살펴 못을 박으라고요. 끄덕끄덕 저부터 중심 흔들려서야 못 하나 박을 수 있겠느냐고요. 제 몸에 못 하나쯤 박아보아야 남의 가슴에 못도 박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요. 차마 ‘못’ 박을 물건이지만 아니 박지 ‘못’할 걸 알고 박아야 ‘못’ 박을 줄 아는 게 아니냐고요.

헐거운 망치자루로 못을 박으면 제 발등 다치는 것 알고말고요. 이제 잘 박힌 못을 보면 잘 박힌 망치자루를 알겠어요. 중심이 중심을 때려 중심을 세우는군요. 못 하나 박는 데도 지우학(志于學)이며 이립(而立)이며 불혹(不惑)이며, 지천명(知天命)이 있으니 세상만사 허투루 대충대충 못질 할 일 없다고요.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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