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실][자연과학]건축일화 가득한 ‘호기심 박물관’

  • 입력 2004년 5월 14일 17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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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건들건들/마이클 콕스 지음 마이크 필립스 그림 오숙은 옮김/154쪽 4900원 주니어김영사

우리 청소년들의 독서 상황은 고시생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읽을 시간이 없을 뿐더러 마음의 여유도 없다. 절대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로서는 필요한 독서량을 요약된 읽을거리들과 참고서류로 대충 때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적 지구력이 필요한 고전 위주의 권장 도서 목록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열악한 독서 환경을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현실에서부터 대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고시생처럼 찌들어 있는 아이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마음을 살찌울 수 있는 책, 당장은 깊은 독서가 어렵지만 지적 호기심만이라도 일깨워 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이 점에서 ‘건축이 건들건들’은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화장실에 앉아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고 가볍다. 내용도 ‘호기심 천국’ 수준이다. 1300개가 넘는 방이 있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는 원래 화장실이 없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주변이 모두 폭격 당했음에도 용케 살아남은 영국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은 독일 공군이 위치 표적으로 삼기 위해 일부러 남겨둔 것이라는 사실 등등은 읽는 아이들을 어느새 건축에 대한 흥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횃불의 무게가 무려 1t에 이른다는 사실이나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엄청난 천장 무게 때문에 짓는 데 매우 힘이 들었음에도 주차장이 없어 외면당했다는 점, 런던의 대영도서관은 구조가 너무 복잡해 설계자조차도 길을 잃어버렸다는 일화 등은 호기심 충족 수준을 넘어서 건축에 얼마나 정밀한 계산과 주의가 필요한가를 자연스럽게 일깨워 준다.

이 책에는 건축에 대한 본격적인 강의는 한 마디도 없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희한한 이야기와 기발한 만화들뿐이다. 그럼에도 읽어가다 보면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그 후에는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가슴에 뭉클하게 다가온다. 단순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얻는 깨달음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에서 청소년용 입문서로 아주 뛰어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화려하지 않은 재질과 편집에 있다. 지금의 청소년 책들은 ‘미디어 세대’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지나치게 크고 화려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훌륭한 책은 환상을 눈으로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스스로 상상하게 만든다. ‘건축이 건들건들’은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모두 자극한다는 점에서도 좋은 책이다.

안 광 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 도서관 총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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