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워크아웃 기업서 짜낸 비자금

  • 입력 2004년 1월 13일 0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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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 관리를 받던 대우건설이 300억원대의 비자금을 만든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 중 수십억원대의 자금이 여야 정치권에 대선자금 등의 명목으로 건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워크아웃이란 기업이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부도를 면하게 해 주어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경영개선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빚 갚는 시기를 늦춰주거나 추가로 운영자금을 더 빌려주어야 한다. 때로는 대출금을 자본금으로 전환해 빚 부담을 줄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빚을 탕감해 주는 대가는 혹독하다. 해당 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받는다. 직원을 줄이고 알짜 자산을 팔아야 한다. 또 자금을 쓸 때는 일일이 채권단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1999년 8월 워크아웃 대상 기업에 선정됐던 대우건설도 당연히 이런 과정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워크아웃을 졸업한 것도 그간의 구조조정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우건설이 워크아웃 과정을 제대로 거쳤는지 의문이 든다. 거액의 비자금을 임원 판공비나 경조사비, 공사 수주시 발주업체에 주는 뒷돈, 정치권 로비자금 등의 용도로 썼다는 검찰의 발표를 보면 워크아웃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도덕적 해이의 극치였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기업, 수천명의 직원을 해고하며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업에 손을 벌린 정치인들의 행태이다.

게다가 이중삼중으로 채권단의 관리감독을 받는 회사가 어떻게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채권단에서 활동했던 금융계의 한 인사는 “채권단은 회계장부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자금만 관리하기 때문에 회사장부에 드러나지 않게 비자금을 조성하면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건설업계의 비리관행이 쉽사리 근절될 수준이 아니다.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만한 관련 임원과 간부도 비자금을 마련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워크아웃이라면 그만두는 편이 차라리 나을 듯하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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