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셰익스피어 평전'…모친 영향 아집-변덕 없었다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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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평전/파크 호넌 지음 김정환 옮김/644쪽 2만8000원 북폴리오

문호(文豪)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그를 다룬 이 평전은 전기 작가이자 영국 리즈대 영문학부 명예교수인 저자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1차 문헌을 바탕으로 10년여에 걸쳐 조사 연구한 결과다. 그는 작가에 대한 소문이나 전설을 엄격하게 배제하고 아날 역사학파의 ‘총체적 맥락’ 방식을 택해 서술했다.

튜더 왕조 시기의 사회상, 극장과 극단의 흥망성쇠, 작가 가족 및 주변 인물들에 대한 치밀한 서술이 돋보인다. 저자는 특히 잉글랜드 중부 스트래퍼드어폰에이븐에서의 셰익스피어의 성장기를 깊숙하게 들여다본다.

영국 스트래퍼드어폰에이븐에 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생가. 그는 이곳에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내며 라틴어를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고전 교육을 받았다. 훗날 극작가로서 필요한 소양을 일찌감치 길렀던 셈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셰익스피어는 1564년 런던 인구의 5분의 1을 휩쓸어 버린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아버지 존은 상공인이었으며 어머니 메리는 지적인 여성이었다. 극심한 열병이 돌던 시기라 메리는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셰익스피어에게 변덕스러운 아집이 없고 훗날 ‘긴장의 벌집’이나 다름없는 극장계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경력을 쌓은 일, 그의 소네트들이 감정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볼 때 저자는 생애 초기 셰익스피어가 어머니의 집중적인 사랑을 받았음이 분명하다고 해석한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벼락부자로 신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런 맥락에서 셰익스피어의 예의범절에 대한 관심은 주목할 만하다. 예의가 발랐던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에서 비극적인 왕과 찬탈자, 연인들이 스스로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언어를 쓰거나 점잖지 못한 행동을 하다 실패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햄릿은 형식과 예의범절, 균형과 제정신을 상실한 세계에 있다. 희곡 ‘이에는 이’에서 셰익스피어는 ‘아이가 보모(保姆)를 때린다. 정말이지 개판이다. 예의범절은 모두 사라졌다’고 썼다.

어느 아들도 아버지의 영향에서 피해 갈 수는 없다. 셰익스피어도 장갑 직공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작품에 장갑 이미지가 풍성하게 나타난다. 희곡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슬랜더는 “장갑을 걸고” 맹세하고, 로미오는 높은 곳에 있는 줄리엣을 향해 탄성을 지른다. “오, 내가 그 손에 낀 장갑이라면.”

셰익스피어는 18세 때, 8세 연상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해 첫딸 수재너를 얻었고 2년 후 첫아들 햄넷과 둘째딸 유디스 쌍둥이가 태어난다.

그는 생계를 위해 런던의 극단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으로 출발했는데, 1590년을 전후한 시대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로 국운이 융성하던 때라 문화적 수요가 많았다. 그러나 1592년부터 2년간 흑사병이 몰아쳐 극장이 폐쇄됐고, 더불어 런던의 극단들도 전면 개편됐다. 신진 극작가 셰익스피어에게 활동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극작가로 승승장구하며 이후 20여년간 전속 극작가 겸 극단 공동경영자로, 때로는 배우로 무대에 직접 서기도 했다. 바쁜 스케줄 가운데 집중할 시간을 찾아야 했던 셰익스피어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배우들이 그를 술판에 초대하면 거짓으로 ‘아프다’는 글을 보내 홍등가에서의 방탕을 피했던 착실한 생활인이기도 했다.

이 밖에 셰익스피어가 집을 사면서 겪은 가족 살해사건이 ‘햄릿’의 기원이 됐으며, 딸 수재너가 결혼할 무렵 ‘페리클레스’ 5막에서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증언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썼다는 이야기 등이 흥미롭다.

원제 ‘Shakespeare: A Life’(Oxford University Press·1998).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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