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71…귀향 (5)

  • 입력 2003년 11월 18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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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교는, 그날, 반장에게서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마당으로 뛰쳐나가 목이 터져라 윤세주 만세! 윤세주 만세!” 작은할아버지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막걸리를 들이켰다.

“지금도, 왜 목숨 줄이 끊어졌는지 모르겠다. 아이고, 기관지염을 앓아누웠는데, 며칠 그래 지내면 낫겠지 했구먼….” 할배도 곰방대를 재떨이에 내려놓고 막걸리를 훌쩍거렸다.

“뭐 좀 드시라고, 생강차를 끓여서 머리맡에 앉았지예. 재미나는 꿈이라도 꾸는 표정이라, 열이 내렸나 싶어서, 이마에 손을 대보았더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게, 아이고, 세상에! 얼매나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는데…반년만 더 살았으면 볼 수 있었을 낀데….” 어머니는 빈 사발에 막걸리를 부었다.

“아이구 불쌍타. 장가도 못 가고 자식새끼 하나 없이 죽었으니, 아이고, 세주가 운동 시작하기 전에 장가 간 건 형밖에 없다 아이가. 나머지 형제 셋은 다들 독신. 일도 못하고, 장가도 못 가고, 허, 자식새끼도 없고…27년 동안, 그저 가는 세월, 기다리기만 했는데, 세주가 돌아올 날을…아이고, 아이고.” 작은할아버지는 또 막걸리 사발을 비웠다.

끼익, 사립문이 열렸다.

윗목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소리가 다가온다.

혼자다.

돌아왔다.

그러나 툇마루 앞에 나타난 사람은 윤세주가 아니었다. 삼십대 중반의 낯선 남자였다. 국방색 인민복에 둥근 모자를 썼다.

“여기가 윤세주 동지 댁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만.” 아버지가 일어섰다.

“강우홍이라고 합니다. 윤세주 동지와 함께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웠습니다.”

“작은아버님은?” 아버지는 눈을 깜박거리며 남자의 눈빛을 읽었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서 정말 유감입니다만….” 남자는 툇마루로 눈길을 떨구었다.

우자는 바늘을 쥐고 있는 것도 모르고 두 손을 꼭 움켜쥐어, 오른 손바닥이 바늘에 찔리고 말았다. 보라색 옷감에 핏방울이 떨어져, 에구머니나, 이를 어째,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우자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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