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70…귀향 (4)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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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이 삐걱 소리를 내자 우자가 바느질감에서 고개를 들었다.

“빨간 융단이 다 깔린 모양이더라.”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벗으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간 융단?” 어머니는 두루마기를 옷걸이에 걸었다.

“무안에 들어왔다 카네. 빨간 융단을 깔고 환영할란갑다.”

“아이고, 드디어 오시네예.”

“아아, 그래.”

우자는 작은할아버지의 한복을 바느질하고 있다. 중국에서 27년 동안이나 싸우셨다, 보나마나 인민복 입고 돌아오시겠지. 지금 아버지가 돌아와 그랬던 것처럼, 툇마루에서 두루마기를 벗고 들어오실 거야, 아아 가슴이 두근두근거려, 뭐라고 말을 걸면 좋지? 아이고, 어서 오시소? 아이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야 다들, 가슴이 벅차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할 거야. 누가 입을 열었다 하면, 울음이 북받치겠지, 할배도 작은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도 동생들도…그리고는 서로를 꽉 껴안고…아이고,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바늘 끝이 안 보이네.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곧장 이 한복으로 갈아입으셨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까지는 다 될 것 같은데, 만약 오늘 돌아오시면, 아이고, 서둘러야지.

“밀양을 어데 무안에 비합니까. 김원봉 장군이나 작은아주버니나 다 밀양 출신이다 아입니까. 의열단에도 밀양 출신이 수두룩하고.” 어머니가 남자들 앞에 막걸리를 내 놓으면서 말했다.

“김원봉 장군은 사명당에 필적하는 우리 고향의 영웅이다.” 아버지가 윗목에 자리를 잡고 정좌했다.

“아 참 그라고, 사명당비는 땀이 그쳤는가.” 잠자코 곰방대를 빨고 있던 할배가 끼어들었다.

“온 동네가 경사났다고 난리라, 땀 흘린다 캐도 아무도 모를 끼다.” 할배보다 열세 살 적고 윤세주보다 여덟 살 많은 작은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들이켰다.

“살아 돌아오는가.” 할배가 곰방대를 탁탁 두드려 재를 털어냈다.

“무슨 그래 불길한 소리를 하는 기고.” 작은할아버지가 꿀꺽 소리나게 막걸리를 삼켰다.

“어젯밤 꿈에, 세주가 새가 돼서 훨훨 날아가더라 말이재.”

“아이고, 불길타….”

“아버지, 반드시 돌아옵니다. 벌써 무안에 왔다 안 캅니까. 그래 불안하면 내가 무안까지 갔다 올까요.”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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