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향지의 '범여울'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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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 고양이가 물어갈 호랭이 같으니라고. 그러니께 저게 다 같은 족보로구먼 그랴. 곶감에 놀라 소도둑 태우고 삼십육계 치던 이가 할애비고, 얼음낚시하다가 저수지에 꽝꽝 꼬리 물린 치가 삼촌이고, 사냥꾼에게 한 벌 가죽 벗기고 오들오들 떨며 하릴없이 칡담배 팍팍 피우던 그 호랭이 외손녀로구먼 그랴. 여남은 살 되도록 토끼 한 마리 시원하게 못 잡다 용케 시집 가 배부른 것 기특하더니만 피는 못 속이는구먼 그랴.

놀랍고 정신없기야 했겄지. 큰물은 덤비지, 애들은 울지만. 허나 삶이란 게 본래 비는 오는데 소는 뛰지, 꼴짐은 넘어가는데 오줌은 마렵지, 오줌은 마려운데 허리띠는 안 풀러지는 것 아니겠나. 대체 범강이 장달이, 이순신 같은 호랭이는 다 어디 가고 고양이 똥 치울 호랭이만 남았는고?

에고, 남의 얘기 할 바 아니라고? 범은 없고 범여울만 남은 시대여, 우리는 또 돌에 눌려죽을 어느 자식을 입에 물고 이 세상을 건너는 것이냐.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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