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100세의 마라톤

  • 입력 2003년 9월 30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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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인(Centenarian)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100세 이상의 인구가 2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미국은 100세 인구가 6만명에 이르고 일본은 1만5000명에 달한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100세 이상의 미국인이 급속히 늘고 있어 2050년이 되면 8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장수는 반가운 일이지만 ‘행복한 노년’이 보장되지 않고 수명만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노년 이후 빈곤과 질병, 외로움의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며 오래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 ‘장수’와 ‘삶의 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은 없을까.

▷인생에 대한 애착은 나이와 비례해 커진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살고 싶은 욕망을 더욱 간절하게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노인 자살률이 전체 인구의 자살률보다 훨씬 높다는 통계가 나왔다. 여생을 즐길 나이에 죽음을 선택한다는 이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나라 노인들이 얼마나 딱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1970년만 해도 63세에 불과했다. 결혼해서 자식 키우고 나면 세상을 떠날 나이가 됐던 것이다. 문제는 평균 수명이 늘면서 발생했다. 자녀 교육시키느라 모아 놓은 돈도 없는 데다 자식에게도 의존하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경제적인 문제 이외에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생활에도 노인층은 익숙하지 못하다. 직장에서 은퇴하게 되면 이후 20, 30년간을 부부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인 입장에서 노년의 남편에게 이러저러한 불만이 없을 리 없고, 부인의 푸대접에 남편은 소외감을 느끼면서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안팎으로 예상치 못한 시련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심각한 노인문제에 대해 정부는 취업 기회의 확대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농경시대 때 노인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노인들에게 계속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는 수녀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주목해 ‘우아한 노년’이라는 연구서를 펴냈다. 그에 따르면 수녀들의 장수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도와 명상이다. 인간의 슬픔과 고통에 따른 충격을 완화해 주는 기능을 한다. 또 하나는 공동체의 힘이다. 수녀들의 사회봉사와 서로를 존중하는 집단생활이 장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1일은 세계노인의 날이다. 고령화사회를 맞이하는 제도적 대응도 필요하지만 ‘100세의 마라톤’을 준비하는 모두의 마음자세도 그 못지않게 시급한 게 아닌가 싶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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