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민전/되풀이 되는 정치권 부패

  • 입력 2003년 8월 1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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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무더위보다 더 국민의 불쾌지수를 높이는 보도가 연일 지면을 메우고 있다.

서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분양 대금 중 일부가 정치권에 뿌려졌다는 굿모닝시티 사건, 그 와중에 불거진 민주당 대선자금 분식회계 의혹의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수백억원대의 현대비자금이 2000년 4·13총선 때 여권에 지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 쪽에서도 2000년 총선 당시 공천헌금 문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까지, 그리고 전현직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전반이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혹 사건이 터졌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정권마다 부패척결 다짐이 되풀이됐건만 지금 이 순간까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 눈을 속이는 ‘위장개혁’▼

이승만 정부 때의 중석 부정 불하사건, 5·16군사정변 직후 4대 의혹사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한보비리사건, 안기부(현 국정원)자금 유용사건, 그리고 세풍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자금 스캔들이 연속됐지만 이를 막기 위한 진지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역대 정권 모두 제도적 보완보다는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부패사건을 이용하거나 국민의 눈을 속이는 위장개혁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정치자금 스캔들이 반복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고비용 정치구조로 인한 정치권의 자금수요와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의 소지가 큰 경제구조에서 비롯되는 기업들의 대(對)정치권 자금공급 의사가 맞물린 정경유착에 있다.

하지만 허점투성이에 솜방망이 처벌인 정치자금법의 문제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비용’인 정치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행 정치자금법은 대통령후보 경선 등 각종 당내 경선은 물론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후보들이 합법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길을 봉쇄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음성자금을 수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치자금법은 정경유착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정치자금의 기부 한도를 설정하고 있지만, 정치자금의 수입 명세 및 기부자 신상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이 임직원의 이름으로, 또는 개인이 친인척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법을 우회하여 기부할 수 있는 허점이 있다. 또 당비의 상한액 규정이 없고 당비 명세도 비공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당비라는 이름으로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돈을 받고 공천 장사를 하는 것도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뿐만 아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친족에게서 받은 돈을 정치자금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기 때문에 자금세탁의 통로로 친족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김근태 의원의 양심선언에서 드러나듯이 정치자금의 짜맞추기 신고나 축소 신고의 관행이 계속되고 있지만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밝혀낼 수 있는 제도적 권한도, 조직적 뒷받침도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음성 정치자금의 질곡에 빠져 정치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비용 정치구조를 깸으로써 원천적인 자금 수요를 줄이는 정치개혁 노력과 함께 경제적 측면에서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임으로써 정경유착 소지를 차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동시에 더 정교한 정치자금 규제법을 만드는 것도 시급하다. 정치자금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여 수입 및 지출 명세는 물론 기부자의 신상까지 모두 공개하고 정치자금의 회계보고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실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

▼진상조사 없인 제도개선 공염불 ▼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제기된 의혹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반성 없이는 제도개선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비자금 사건에 노출된 몇몇 사람만 처벌하고, 그 자금의 혜택을 받았을 다른 정치인들은 정치자금법상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덮어두는 식의 처리는 곤란하다. 정치권 스스로가 공신력 있는 기구를 구성해 정치자금 전반에 대해 조사를 한 뒤 국민의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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