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18…명멸(明滅)(24)

  • 입력 2003년 5월 18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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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4월26일 구니모토 우데쓰 야스다 시즈코 혼인 신고 동일 입적

올림픽의 문을 열자 조그만 남자애가 서 있었다 전처가 낳은 아이도 아니고 지금의 처가 낳은 아이도 아닌 내 아들이었다 순간적으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이 내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생각해 봐! 아이들 이름에 전부 신(信)이란 한 글자를 넣었는데 아 생각났다 이 아이는 내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지

신철아 여기서 뭐하는 기고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엄마-

아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을 안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토라지기도 잘 해서 곧잘 안아 주었는데 아마 1940년 봄에 태어났을 것이다 나는 아들의 엉덩이를 받친 손으로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하나 둘 셋 세 살인가 신명이보다 두 살 어리고 신호보다는 두 살 위다 신호를 배고부터 그 여자의 성정이 한층 거칠어졌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그 여자한테 가면 기름 확 갖다 붓고 불 질러버릴 테니까 신명이하고 뱃속의 아이하고 다 데리고 가버릴 끼다 뛰어가면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데 벌써 2년이나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아이는 나를 닮았다 두 딸은 제 어미를 닮았는데 아들들은 어찌된 셈인가 모두 신태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울기만 하면 모른다 아이가 울지 말고 말해 봐라 엄마가 엄마가 다리 있는 데까지 손잡고 왔는데 혼자서 아버지한테 가라면서 엄마는 멀리 멀리 갈 거니까 얌전하게 아버지 말 잘 들으라고 카면서 엄마 엄마-

정희를 호적에 올렸다는 소문이 귀에 들어간 것이리라 하지만 왜 다들 아이들을 놔두고 가버리는가 자기 배를 앓아 낳은 아이를! 그 여자는 밀양 출신이 아니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스물 네 살에 집을 나와 OK카페에서 춤을 추게 되었다고 들었다 대구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고 생각해 보면 아는 것은 이름과 얼굴뿐이다 김미영 가네다 요시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집을 나왔을 테니 대구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부산항 언저리에 있는 댄스홀에서 새하얗고 뽀얀 그 젖가슴과 엉덩이를 흔들면서 원 투 스리 원 투 스리 남자의 눈길을 끌지 않고서는 못 사는 여자다 안 됐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지녔으니 내일은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원 투 스리 원 투 스리 이 아이를 어쩐다! 어쩌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나다 나는 이 아이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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