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형준/반도체 '불순물' 의 교훈

  • 입력 2003년 5월 16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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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지식정보화 사회’라 일컫는다. 이를 가능케 한 것 중 하나가 반도체 산업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한국에서 이제 20년 넘은 ‘새내기 산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최근 수출과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15%, 5%에 이를 정도로 국가산업의 기둥 노릇을 하고 있다. 이제 반도체기술은 세계 첨단기술의 척도가 되었고,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정보기술(IT)과 나노기술(NT)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으로 앞으로 한국의 첨단기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 반도체의 도움 없이 현대 문명사회를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이런 반도체가 갖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있다.

반도체라 하면 청정실(淸淨室) 안에서 마치 우주비행사처럼 머리까지 둘러싼 하얀 특수복을 입고 작업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이 안에선 물론 화장도 할 수 없다. 아주 미세한 입자가 반도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도체는 매우 깨끗한 물질, 즉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질을 다룬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청정실을 사용하고 청정복을 입는 이유도 불순물의 유입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나 아이러닉하게도 반도체는 물질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이오드나 트랜지스터와 같은 순수한 상태의 전자소자로는 만들어지지 못한다. 적당량의 불순물을 반도체 속에 주입해야 인간이 필요로 하는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청정실 속에서 청정복을 입고 공정을 진행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불순물을 원하는 양만큼만 넣기 위함이다. 반도체 공정에서 원하는 불순물의 종류와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전자소자를 제작하기 위한 기본 단계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갖고 봐야 할 사실은 반도체가 적합한 종류와 적정한 양의 불순물을 함유하고 서로 맞대야만 전자소자로서의 기능을 최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옛말과 일맥상통하는 이치다.

고기가 살지 못하면 생산적인 물이 될 수 없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산적인 사회 안에는 적정한 불순물이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불순물은 무엇일까. 대다수 사람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나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을 뜻할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전체주의 사회는 마치 순수한 반도체를 보는 듯하다. 이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아닐 것이다.

반도체는 주어진 온도와 압력에 따라 포함할 수 있는 불순물의 최대량이 정해진다. 우리 사회도 주어진 사회 상황에 따라 이견자의 수가 달라진다.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소수의 이질적 존재를 완벽하게 제한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반도체와 같은 물질세계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다. 의견이 다르다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라고, 경원시하거나 배척하기보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함으로써 우리가 발전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이질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반도체에서 얻는 또 다른 교훈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각자는 사회라는 커다란 기판 위에 올려지는 불순물일 수 있다. 역사의 흐름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각기 다른 불순물이 되어 적정한 양으로 주입되고 집적되어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아닐까.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성질이 다른 불순물일 것이고, 모두가 적절히 배합되었을 때 사회는 발전할 것이다. 각자 서로 다른 불순물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 말이다.

최첨단 반도체의 개발, 그것은 바로 이 시대에 서로 다른 개인이 적정한 불순물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노력과 함께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갑작스레 더워진 봄날, 어쩌면 단비 머금었을 구름 한 점 같은 불순물도 되어 볼 일이다.

김형준 서울대 교수·재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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