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지방의원 유급화 '씁쓸한 합창'

  • 입력 2003년 5월 7일 19시 01분


6일 경남 창녕군 부곡하와이에서 열린 ‘영남권 시도의원 지방분권 세미나’는 한마디로 한나라당 당권주자들과 지방의원들의 ‘거래 현장’이었다.

이날 세미나의 주제는 ‘지방분권’이었지만 실은 영남권 지방의원들이 당 지도부에 지방의원의 유급화 입법을 관철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은 물론이고 세미나에 달려온 서청원(徐淸源) 대표, 최병렬(崔秉烈) 강재섭(姜在涉) 김형오(金炯旿) 의원 등 당권주자들은 모두 “초청을 받아서 왔다”고 말했다.

사회자도 이들을 소개하면서 “당권주자들은 유급화에 대한 견해를 2분 안에 말해 달라”며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희망사항’에 대한 지지를 강요했다. 세미나장에는 부산 대구 경남북에서 온 100여명의 지방의원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앞자리에 앉아 있는 당권주자들에게 쏠렸다.

이들은 지방의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당권주자들은 한목소리로 “지방의원의 유급화는 이 시대의 당면 과제요, 역사적 흐름”이라며 “지방분권의 핵심은 지방의원의 위상을 제고하는 것으로 무조건 유급화를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화답했다. 지방의원의 유급화가 ‘시대의 당면 과제’로까지 격상된 것이다.

주자들은 세미나가 끝난 뒤 뭔가 개운치 않았는지 역시 한목소리로 “지방의원의 유급화는 평소 소신”이라고 거듭 강조하기까지 했다.

물론 지방의원 유급화는 2001년 7월 국회 정치개혁특위 차원에서 여야가 합의한 사항이긴 하다. 또 한나라당이 올 3월 유급화 입법 방침이 당론임을 거듭 천명하기까지 한 만큼 당권주자들이 한 달여 남은 전당대회를 의식해서 ‘억지 공약’을 남발했다고 비판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미나 현장을 지켜본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당권주자들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저게 무슨 원내 과반의석의 제1야당 대표 적임자를 자임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냐. 지방의원들의 ‘볼모’에 불과하지…”라는 자탄이 끊이지 않았다.

한 당직자는 “당권주자들이 지방의원 유급화에 그토록 관심이 많았음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이번 전당대회가 과거처럼 단순히 당 대표를 뽑는 자리다툼의 행사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정말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권주자들의 발언이 끝난 뒤 사회자는 “발언내용이 모두 녹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당권에 뜻있는 사람들도 이 자리에서는 ‘유급화의 볼모’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장면이었다.

박민혁 정치부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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