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연욱/'행방불명' 특검법 재협상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17분


코멘트
지난달 16일 출범한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의 대북송금의혹 수사가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특검 수사의 칼끝이 외곽에서 핵심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에 착수한 지 20일이 돼가지만 특검팀의 ‘항로(航路)’와 수사 절차를 명기한 ‘로드맵’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여야가 특검법 재협상의 원칙에만 합의했을 뿐 특검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협상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들은 지난달 17일 청남대에서 특검법 재협상의 가이드라인에 대부분 합의했다.

특검수사의 기간(최장 120일)은 유지하되 수사과정에서 드러날 북한 인사 및 북한 계좌에 대한 익명성은 보장하며, 수사기밀을 유출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데는 합의했다. 그러나 특검수사 명칭에 ‘남북정상회담’을 빼는 문제만큼은 합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후 법안 자구(字句) 심의 등 특검법 개정안을 처리하려는 여야간 움직임은 전혀 없다.

당초 특검법 자체에 반대했던 민주당 내에서는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 김상현(金相賢) 고문은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노 대통령이 특검법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건의는 받아주지 않고,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특검법을 공포해 문제가 됐다”고 비난했다. 이런 분위기에 더해 당이 신당 논의에 빠져들면서 특검법 재협상 문제는 아예 ‘찬밥 신세’가 됐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우리는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사실상 특검법 재협상은 끝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특검법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분란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특검팀이 북한 계좌를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여당은 이를 금지하겠다는 합의정신에 위배된다고 비난할 게 뻔하다. 수사기밀을 유출하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현행법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이도 여야의 합의정신에는 위배된다.

특검팀은 정치권의 ‘직무유기’에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정치권 공방에 휩쓸려 피해를 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검법 재협상은 여야간의 약속을 넘어 이미 국민에게 한 약속이다. 특검팀이 분명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정치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정연욱 정치부 기자 jyw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