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서지문/'코드'의 혼란

  • 입력 2003년 5월 4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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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영문과 교수이다 보니 요즘 한창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말의 ‘코드’의 철자가 어떻게 되며 정확히 무슨 뜻을 가진 말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상당히 난감한 질문이다. 간혹 ‘코드’를 ‘cord’, 즉 ‘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본데 아무리 ‘유대’가 강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cord’가 통한다고 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code’를 생각하지 않나 싶은데 ‘code’가 통한다는 표현의 적절성과 정확한 의미는 상당히 아리송하다. ‘the Napoleonic Code(나폴레옹 법전)’나 ‘Code of Hammurabi(함무라비 법전)’ 등의 경우처럼 성문화된 법전을 공유한다는 뜻은 아닐 테고, ‘unwritten code(불문율)’는 도덕이나 관습적인 규범이므로 이것도 아닌 것 같다.

▷‘code’에는 ‘규준, 관례, 예의범절’의 뜻도 있다. ‘the Confucian code of ethics’ 하면 ‘유교적인 도덕률’이고 ‘the chivalric code’ 하면 기사의 행동규범이다. 이 뜻도 해당이 될 듯하지만 딱히 처신의 기준이 같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 ‘기호, 암호’도 ‘code’의 매우 중요한 의미인데 ‘암호’가 통하는 집단이라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으나 설마 대통령과 측근들을 비밀결사 취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코드가 맞는다’는 말이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동질성 이상으로 심정적으로 통한다는 의미라면 ‘chord’가 오히려 가까울 수 있겠다. ‘chord’는 음악의 ‘화음’이지만 ‘감정, 정서, 심금’의 뜻도 갖고 있어서 ‘strike a sympathetic chord’ 하면 ‘공감을 자아낸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chord’를 써서 ‘코드가 통한다’로 번역하기는 어렵다. 영어에 ‘be in tune with(마음이 통한다)’나 ‘be on the same wavelengths(주파수가 같다)’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고 근사(近似)한 번역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코드가 맞는다’는 말은 우리가 부여한 어떤 은밀한 의미 때문에 재미있는 표현인데 불행히도 이 ‘코드’가 ‘코드’ 밖에 있는 대부분의 국민에게 소외감과 불안감을 주고 있다. 요즈음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여러 신임 고위공직자들을 국민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는 요직에 등용되는 사람의 프로필에서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서지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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