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국정의 우선순위'

  • 입력 2003년 4월 13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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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아일보의 경제담당 기자들은 거의 매일 적잖은 고민에 빠진다.

정부가 발표하는 내수 투자 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나 국책 및 민간 연구기관에서 나오는 조사 결과가 한결같이 어둡기 때문이다. 현장의 체감경기는 훨씬 더 얼어붙었다. 가급적 밝은 뉴스를 지면에 싣고 싶어도 최소한의 ‘기사 요건’을 갖춘 내용이 드물다.

정부는 현재 한국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으며 이라크전쟁과 북핵 문제만 해결되면 곧 좋아질 것처럼 얘기한다. 또 ‘언론이 의도를 갖고 경제위기를 과장한다’며 걸핏하면 책임을 언론에 돌린다.

하지만 경제분야를 12년 이상 다뤄온 기자의 경험으로 말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나오는 경제지표마다 워낙 우울하다보니 오히려 과거 같으면 더 주요한 기사로 다뤄졌을 내용도 때로는 작게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한번 냉정히 생각해보자. 도대체 우리 경제가 왜 이처럼 어려워졌는가.

이라크전쟁과 북핵 문제를 물론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라크전은 이미 지난해부터 예고됐다. 북핵 문제는 돌발변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난의 원인을 여기에 모두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결국 우리 내부에 경제를 뒤흔드는 불안요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책임은 국정을 맡고 있는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보여 온 특징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편 가르기’로 압축된다. 이 과정에서 현실경제에 영향이 큰 대기업과 ‘가진 계층’은 개혁 대상이라는 느낌을 받고 경제활동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책 우선순위도 그렇다. 이른바 ‘새 언론정책’은 내용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이 사안이 경제와 안보를 제치고 새 정부의 최우선과제가 될만한 타당성이 있는가.

노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매력을 갖고 있다. 또 이런저런 정책이 꼭 악의(惡意)에서 출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의(善意)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인류역사는 악의라고 말할 수 있는 냉철함 덕분에 성공한 사례와, 선의로 시작했지만 실패한 사례로 거의 뒤덮여 있는지 모른다”고 자주 강조한다.

현 정부는 많은 국민을 더 힘들게 만드는 자신들만의 확신에서 벗어나 우선 경제와 안보문제부터 제대로 챙기기를 바란다. 최고권력자에게는 동기의 순수성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이 훨씬 더 중요하다.

권순활 경제부기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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