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마돈나

  • 입력 2003년 4월 1일 19시 17분


“F**k it!” 욕설을 내뱉으며 예쁜 여군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수류탄을 던진다. 부시 대통령은 무릎에 떨어진 불붙은 수류탄에 담배불을 붙여 물고, 화면은 이라크의 피투성이 아이들로 가득 찬다. 세계적 팝스타 마돈나가 내놓은 뮤직비디오 ‘아메리칸 라이프’의 한 장면이다. 미국의 온라인뉴스 드러지 리포트는 “쇼비즈니스 산업이 내놓은 가장 충격적인 반전, 반(反)부시 성명”이라고 전했다. 20년간 섹스 심벌로 군림해 온 마돈나가 이번엔 반전 가수로 변신한 것이다.

▷1984년 꽉 끼는 레이스 옷에 흰색 베일, 진주목걸이와 십자가 액세서리를 하고 나와 ‘라이크 어 버진’을 도발적으로 불러 댈 때부터, 검은 속치마 차림으로 불타는 십자가 앞에서 춤을 춘 ‘라이크 어 프레이어’, 그리고 노골적인 성을 담은 사진집 ‘섹스’에 이르기까지, 겉모습만 보면 마돈나는 발칙한 섹스 심벌일 뿐이다. 하지만 ‘라이크 어 버진’은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이분법적 통념 아래 살아온 여성들에게 “몸을 자랑하는 것도 두뇌를 자랑하는 것처럼 떳떳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고 마돈나 전기 ‘마돈나 섹슈얼 라이프’는 설명한다. 이어서 우주의 어머니 이미지를 보여준 ‘프로즌’,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은 ‘인터벤션’, 종교적 명상을 다룬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는다’까지 보면 도대체 이 여자의 깊이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스무살 때 댄서의 꿈을 안고 미시간주 시골에서 단돈 35달러를 들고 뉴욕에 온 마돈나였다. 방송 데뷔에서 앞으로 뭘 하고 싶으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세상을 다스리고 싶다”고 대답할 만큼 당돌했다. 사회 흐름과 사람들의 심리를 한 발 앞서 알아낸 뒤 기존의 음악 미술 역사 등과 묶어 ‘상품화’해서는 자신의 이미지로 끊임없이 갈아입는 능력이 그에겐 있다. 서구의 시대사조를 예리하게 끄집어내는 본능적 감각과,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챙기는 프로정신은 가히 천재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준 반전 메시지만은 장삿속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두 아이를 기르는 마돈나가 CNN의 ‘래리 킹 라이브’ 토크쇼에 나와서 말한 적이 있다. “내 인생 최고 우선순위는 가족”이라고. 어머니를 여섯살 때 여의고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며 자란 그에게 ‘애정 결핍’은 영원한 고통이자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되고 싶은 모습도 디바나 아티스트가 아닌 ‘좋은 엄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쟁의 참상에 가슴아파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도 마돈나와 같은 어머니의 심정이 아닐까 싶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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