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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1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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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권력자들에겐 독립신문이 눈엣가시였다. 중상모략이 끊이지 않아 독립신문은 3년 만에 인쇄를 멈췄다.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왕조시대나 민주시대나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늘 그렇다. 그게 언론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을 권력이라고 규정한 것은 일면 옳고 일면 그르다. 거의 무제한적인 정치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대항권력’의 하나라는 점에서 꼭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두 권력의 속성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노 대통령은 얘기하지 않았다. 언론은 정치권력과의 대항관계에서만 권력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력의 결함을 제거하기 위한 언론의 권력적 성격은 아무리 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그것이 스스로의 힘과 욕망 때문에 오만하고 부패하기 마련인 정치권력을 도와주는 길일 것이다. 강한 언론이 없으면 정부도 바로 설 수 없다. 정부가 어쩌면 더욱 직접적인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언로가 막히면 민란이 일어난다”는 율곡 이이 선생의 말은 지금도 타당하다.
그래도 정치권력은 항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언론이 귀찮을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의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은 재임 중 “한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선택의 권력’을 제멋대로 행사하고 있다”며 비판언론에 짜증을 낸 적이 있다. 당시 CBS방송 프랭크 스탠튼 사장의 반박이 명쾌하다.
“우리 기자들의 결함이 무엇이든 그것은 정부에 추종하는 언론의 결함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다.” 이를 확대시켜 보면 이런 얘기도 가능할 것이다. “언론의 결함이나 위험성이 무엇이든 그것은 방대한 권력을 갖고 있는 정부의 결함이나 위험성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다”고.
노 대통령은 또 “언론권력은 세습까지 하므로 공정하기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제와 결론 모두 동의할 수 없다. 따진다면 상속도 광의의 세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요즘 상속을 세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봉건적 어감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세습이라고 표현한 것엔 부정적 언론관이 담겨 있다고 본다.
어쨌든 세금을 얼마나 물리느냐 하는 것은 정책적 문제라고 하더라도 상속권은 엄연히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의 하나다. 그리고 재산권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탱하는 본질적인 기본권인데 이를 어쩌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상속과 공정성을 연결시키는 것도 비논리적이다.
세계 유수의 권위지도 대부분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으로 대물림을 해왔지만 그 때문에 공신력이 의심받지는 않는다. “신문 파는 사람에겐 ‘신문! 신문! 매장(每帳·한 장)에 한푼씩이오’라고 외치라고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107년 전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의 회고다. 한국 최초의 근대신문인 독립신문도 사고파는 신문이었던 것이다. 신문의 날인 7일은 독립신문 창간기념일이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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