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58…1933년 6월 8일(3)

  • 입력 2003년 3월 4일 18시 30분


코멘트
아직 단오라 태양은 조심스럽게 빛나고 있는데, 점심밥을 다 먹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인부들은 귀 뒤까지 누렇게 타 있다.

솥에 눌어붙은 보리밥을 숟가락으로 긁어내며 최민태(崔民泰)가 말했다.

“여동생이 열 살인가 그쯤에 용두목에 빠져서 죽었다 아이가. 그리고 한 달도 채 못 돼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단독으로 급사했으니께, 남들은 모른다.”

“그 집이 가족이 몇이나 되더라?”

“우철이, 우근이, 우철 어머니, 며느리, 딸, 오늘 아침에 태어난 아들까지 하면 여섯이다.”

“그라믄 스무 살 나이에 다섯 식구나 먹여 살려야 한단 말이가. 아이고, 한 켤레에 50전 하는 고무신 팔아서 용케 입에 풀칠하고 있네.”

“용하가 죽은 지 몇 년이고?”

“2년 전 겨울에 죽었다 아이가.”

“마흔 한 살 그 젊은 나이에…참말로 아까운 인물이었는데….”

“그 해 9월에 만주사변이 일어났재.”

“쌀가게 김씨네서 신문을 봤는데, ‘제○사단 사령부는 ○○일 오전 ○○○○○에 봉천을 향해 요양(遼陽)을 진발(進發)했다’고 돼 있는기라. 뭐가 무슨 소린지, 왜 사단 이름하고 일시까지 꺼먹자로 해야 되는 건데?”

“군사상의 비밀이라서 그런 거 아니겠나.”

“일본군은 뭐가 됐든 감추려고 한다.”

“왜놈들은 겁쟁이라서 그렇다.”

“참말로 마음에 안 든다니께네!”

“작년 1월에는 이봉창(李奉昌)이 천황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했다 아이가, 수류탄 던지갖고.”

“조선 총독 우가키(宇垣)가 한 연설이 실려 있었다. ‘이번의 상서롭지 못한 사건은 실로 끔직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범인이 조선사람이라고 하니 끔찍함이 더하다. 일조(日朝)간의 융화에 있어서도, 반도 인사의 자숙을 바라마지 않는다’.”

“용하하고 같은 나이재, 아마.”

“경성 출신의 철도원이다.”

“일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고는 처자식한테도 소식을 끊었다고 하니까, 몇 년이나 계획을 짜고 기회를 엿본 거 아니겠나.”

“대역범(大逆犯)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지금, 어느 감옥에 있을라나.”

“아이구, 모르나? 사형 당했다.”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