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권순활/포퓰리즘의 그늘

  • 입력 2003년 2월 9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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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0년대 로마 호민관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짜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빈민층의 불만을 가라앉히고 정치적 우군(友軍)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빵과 서커스’로 불리는 선심성 복지정책이 역사에 등장한 첫 사례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무료급식의 규모가 커졌고 재정을 압박했다. 많은 빈민들은 일자리에 대한 매력을 잃기 시작했다. 아예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급증했다.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이 치유하기 어려운 폐해를 낳은 사례는 많다. 끊임없이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는 나라를 거덜낸 대표적 케이스다.

국토가 좁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과 달리 아르헨티나는 자연의 혜택을 듬뿍 받은 국가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천혜의 목초지 팜파스에는 사람들이 돌보지 않아도 소가 자란다.

20세기 초 이 나라는 ‘남미의 진주’로 불렸다. 육류와 곡물 수출에 힘입어 193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프랑스에 버금가는 선진국이었다. 수출대금으로 받은 금이 보관창고를 가득 채워 복도에까지 쌓아두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노조와 서민층의 지지로 1946년 집권한 후안 페론 대통령은 이른바 페론주의(Peronism)로 치달았다. 사회개혁과 민족주의의 명분 아래 무리한 임금인상과 각종 연금제도 도입, 주요 기업 및 산업 국유화에 박차를 가했다. 무료 병원과 아파트 건설도 잇따랐다.

외환보유액은 얼마 못 가 바닥을 드러냈다. 페론주의의 망령은 두고두고 아르헨티나를 괴롭히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포퓰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분배와 복지에 대한 지나친 강조다. 생산성이나 효율성은 ‘가진 자를 위한 옹호’나 ‘가슴이 차가운 자본주의 논리’쯤으로 치부된다.

물론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의 축소는 정의(正義)의 한 핵심이다. 이 때문에 강력한 도덕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 특히 정치적 측면에서는 매력적 구호다.

더구나 시장경제 역사가 짧고 초기 자본축적과정의 정당성도 약한 한국에서는 부(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리 곱지 않다.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 평등에 대한 욕구도 강하다.

노무현(盧武鉉) 차기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보다도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듯하다. 복지정책 노동정책 대기업정책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갈등의 핵심이 ‘지역’이었다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념’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경제정책은 동기가 좋다고 해서 같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예산 제약’과 생산성을 무시한 형평성의 강조는 거의 반드시 국가적 재앙을 낳는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역설적으로 서민층이다.

역사가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나라나 지도자는 쓴 대가를 치른다. 노무현 당선자는 우선 ‘포퓰리즘의 그늘’에 관한 각종 사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길 바란다. 이에 관한 자료는 수없이 많으니까.

권순활 경제부 차장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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