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옥동석/재정위기 신경쓰지 말라고?

  • 입력 2003년 2월 4일 2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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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문가들은 국가재정을 걱정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전문가들이 재정위기를 말하면 정부는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핀잔을 주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정부가 돈을 써야 할 분야가 너무 많지 않으냐고 요모조모 따지면 정부는 재정수지가 균형을 이뤄 국가채무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선진국에 비해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고 답한다. 전문가들은 그래도 국가재정이란 실질적으로 정부, 지자체, 공기업, 산하기관 등 공공부문 전반을 지탱하는 기둥인데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재정수지, 국가채무 통계는 자의적 성격이 강하고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쯤 되면 정부는 목청을 돋우며 그런 지적이 국가신용도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 아느냐며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논의 막지말고 지적 수용해야▼

이렇게 재정위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언로(言路)가 막혀 있었다. 국민의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의 치적을 조금이라도 훼손당하지 않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랫돌(재정 건전성)을 빼어 부서진 윗돌(외환위기)을 괸다는 비유를 하면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제 새 정부는 재정위기의 우려에 대해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민 어느 누구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목청만 높이게 될 뿐이다. 새 정부는 재정위기의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기관의 파산에 책임이 없지만 공공기관의 파산에 대해서는 정치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또 민간기관은 정부와의 계약(경쟁입찰을 거친)을 통해 정부예산을 쓰지만 공공기관은 정부의 지시와 명령을 따른다는 조건으로 예산을 쓴다. 이러한 정부 돈은 너무 부드러워 긴장감이 없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노려 겉으로는 민간기관인데도 속으로는 공공기관이 되려는 기관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이 생겨나 있다.

둘째, 공공부문의 범위를 명확히 한 뒤에는 이를 지탱하기 위한 재정을 전면적이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이러한 일을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경제개발 이후 그때그때 단(單)년도 예산짜기에만 바빴지 중장기적 관점에서 공공부문 전체의 재정을 조망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재정상태를 전면 파악한 뒤 비로소 새 정부는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 분야별 재정투입의 규모를 책정해야 한다. 복지 목표의 재정투입을 늘리기 위해 성장목표의 재정투입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 전 국민 건강보장제도를 도입하면 비즈니스 중심국가의 인프라 구축이 얼마나 지연되는지 국민에게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모든 분야를 전부 늘리겠다는 공약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조장할 뿐이다.

재정개혁의 첫 단추는 바로 이 세 가지 과제에 있다. 재정투입의 조정과정에서 어떤 국민들은 혜택을 누리겠지만, 또 어떤 국민은 고통을 겪어야만 할 것이다. 부족한 재정수입을 늘리려고 세금을 추가로 거두는 경우에도 눈물과 고통이 따른다. 눈물과 고통을 겪어야 할 국민(가진 자일 수도 있고 가지지 못한 자일 수도 있다)에게는 이것이 불가피한 국가적 선택임을 설득하고 그들이 이를 진심으로 기꺼이 감내할 수 있도록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희생 따른다면 국민 설득부터▼

외환위기 때 모든 국민이 기꺼이 금모으기운동에 동참한 것처럼 우리는 국가재정을 걱정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기득권에 대한 희생은 자주 요구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재정투입의 전면적 조정과정에서 재정위기의 우려를 근본적으로 불식시켜야 한다. 이 일은 몇 년 뒤에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이미 상처가 곪아터진 후여서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새 정부에 진정 바라는 것은 수많은 공약의 이행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의 중심에서 국민에게 눈물과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옥동석 인천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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