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실리콘밸리, 한국行 바람

  • 입력 2003년 1월 5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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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다녀왔습니다. 올해도 정보기술(IT) 경기가 좋지 않아선지 활력이 넘치기보다는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머물 때는 한겨울 폭풍우까지 몰아쳐 실리콘밸리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이처럼 미국 IT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한국계 연구인력의 한국행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동부쪽은 취업난이 더욱 심해 실직됐거나 아직 일자리를 잡지 못한 연구인력들이 줄줄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때마침 삼성과 LG 등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인력 채용 경쟁이 불붙어 이들의 탈 미국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본사에서 임원이 나와 미국의 주요 지역을 돌면서 각지에 퍼져있는 인력을 저인망식으로 끌어모으고 있답니다. 대개는 현지 연구인력들을 알음알음으로 초청해 기업설명회를 겸한 골프대회를 치르면서 한국 기업행을 권유하는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IT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든 재외 연구인력들은 한국 기업들의 이러한 모시기 경쟁이 싫지는 않은 분위기입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연구원은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고 모기업 초청 골프대회에 나갔더니 인근에 있는 박사급 인력이 다 나와 있더라”며 “입사여부를 떠나 모처럼 유쾌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또 “푸짐한 선물도 받고 기업설명도 듣다 보니 한국 기업에 들어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한국인 연구인력의 한국행이 늘면서 일각에서는 ‘재미 한인 연구 인맥의 씨가 마르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연구인력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그 자신의 능력 못지않게 각 기업이나 연구소 등에서 자리잡고 있는 한국계 인맥의 기능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상황은 억척스럽게 현지에 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인도나 중국계 인력과는 대조적이어서 현지 한국계 인력 내부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답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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