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한미군 철수론'을 경계한다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8시 17분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의 저명한 칼럼니스트가 미 행정부를 향해 촉구한 것이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칼럼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미 여론 주도층에서 이미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새파이어는 남북한 양쪽에서 철수론의 논거를 찾았다. 북한이 아시아에서 테러의 병기고가 되는 것을 막고, 그들의 위험한 핵시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이 인질이 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유권자의 대다수가 ‘분노하는’ 주한미군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도 폈다.

70년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시도한 주한미군 철수는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혐오, 베트남전으로 인한 반전 분위기, 유럽 중시정책의 산물이었다. 한미 관계에만 한정한다면 전쟁억지력으로서 주한미군의 역할이 여전한데도 독재정권을 응징하겠다는 단견(短見) 때문에 철수를 시도했던 것이다.

새파이어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북한의 핵과 함께 한국민의 반감을 이유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역시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민이 원하지 않고 있으니 미군을 철수하라는 것이다. 현실을 잘못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 주둔 문제를 한국과 미국 국민의 갈등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반미감정의 확산이 새파이어 같은 ‘미국 일방주의자들’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국민 대다수는 미군 주둔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미국 조야에 알리는 일이 시급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의 한미 이간작전이 강화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기되는 주한미군 철수론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쐐기를 박아 동맹의 틈을 벌리려는 북한을 도와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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