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상문/떠나는 정책, 이회창씨의 눈물

  • 입력 2002년 12월 22일 18시 09분


6년 전 이회창씨는 정계에 혜성처럼 화려하게 등장했다. 단시일 동안 그는 거대 야당의 총수로 떠올랐고,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 정치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의 눈부신 약진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그가 무난히 승리해 대권을 잡게 될 것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믿어왔다. 그런데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무너지듯 예상을 뒤엎는 이변이 벌어졌다. 20, 30대 젊은층의 저류에 흐르는 정서의 변화를 잘 읽지 못해 그 대응이 미흡했던 것이다. 그의 정치활동에서 천려일실(千慮一失)이요, 천추의 한이 되었다. 대법관 출신으로서 ‘법과 원칙이 서는 반듯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12월 20일 아침, 이회창씨는 이번 대선에서의 패배를 깨끗이 받아들이고,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성공적 대통령직 수행을 빌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사를 발표하는 회견장에서 그는 애써 감추려고 했으나 슬픈 감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몇 차례 말을 중단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 1144만여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눈물이기도 했다. 그의 눈물을 보며 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동아출판사를 창업한 지 40여년, 오로지 출판 인생의 온 정열을 불태워 성공가도를 달리며, ‘출판황제’라는 말까지 들었던 내가, 단 한번 ‘동아원색 세계대백과사전’ 판매의 실책 때문에 동아출판사를 떠나야 했던 슬픔이 복받쳐서였다. 그때 나이 70세. 재기를 꾀하기에는 너무 늦은 실패였다. 50대만 되었어도 하며 원망스레 하늘을 우러러보았던 그날이 생각났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내가 그 같은 시련을 겪었기에 그의 심경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한 이회창씨의 의연한 태도가 존경스럽게 보였다. 68세의 정계 은퇴, 나는 그를 아끼는 의미에서 6년 동안 쌓은 업적을 곱게 묻어버리고 덕망 있는 사회의 명사로서 조용히 새 삶을 개척하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국가에 봉사하는 큰 자리라고 한다면, 그에 못지않은 보람찬 길이 또 많이 있을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자기에게 반대표를 던진 국민도 끌어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가 자신의 말대로 포용력을 발휘한다면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지역대립구도의 타파도 가능할 것이며, 국민통합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6월 월드컵 때 단합된 4강 신화는 ‘하면 된다’는 신념을 우리에게 심어주었고, 이제 그 열정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노무현 시대가 오고 있다. 노 당선자는 동포애의 포용정책으로 북핵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온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부패를 없애고 빈부격차를 줄여 서민들도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노 당선자는 이회창씨의 눈물도 함께 담아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뒤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는 날 온 국민이 석별을 아쉬워하는 좋은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길이기도 하다.

김상문 동서문화사 회장·동아출판사 창업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