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대로된 선거 이렇게 힘든가

  • 입력 2002년 12월 20일 00시 04분


선택은 끝났다. 국민 모두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다. 아울러 이번 대선이 남긴 부끄러운 흔적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점이 국민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영호남에서 각각 특정후보에게 표가 몰리는 부끄러운 ‘동서(東西)현상’이 어김없이 재연됐다. 민주당 노무현 당선자가 영남,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충청출신이어서 예전과 같은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지만 소속 정당을 보면 배타적 지역주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지역의 명예를 파괴하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선택이다. 겉으론 지역감정의 청산을 외치면서 실제론 이를 선거전략으로 활용한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세대간 갈등이 남긴 상처도 문제다. 어느 정도의 세대차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번 선거는 심지어 일부 부모와 자녀간 대립까지 촉발함으로써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를 우리 모두에게 안겨주었다.

아울러 미디어선거가 기대만큼 자리잡지 못한 것도 실망스러운 일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이 일부 정치세력들에 의해 나라 전체를 적개심과 분노로 넘치게 만든 것은 심각한 일이다. TV토론은 기계적인 공정성에만 집착해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노 당선자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간의 선거공조와 파기는 우리 정치의 가벼움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선거 과정에서 여론의 양지만을 찾아 이합집산을 거듭한 정치인들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치인이 그러니 선거운동원이나 지지자도 그들의 천박함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 흑색선전이나 비방이 사라지지 않고 선거 선진화가 실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국민의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심화되면서 이번 선거는 역대 대선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국가에너지를 재생산하기 위한 선거가 이런 식이라면 정치선진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는 정치인들의 뼈아픈 각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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