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케네스 퀴노네스/불신에 휩싸인 제네바 합의

  • 입력 2002년 11월 20일 18시 23분


미국과 북한간의 제네바 합의를 비판해온 사람들은 요즘 축하를 받을 것 같다. 제네바 합의는 이제 보완이 어려울 정도로 파괴됐다.

우리 모두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어리석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새 방법을 찾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동북아시아에서 핵무기 경쟁이 벌어지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평양-워싱턴 팽팽한 ´네탓´ 논쟁▼

우리는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핵이 없는 한반도를 원한다. 미국과 한국, 일본은 지난달 26일 정상회담과 9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통해 이를 분명히 밝혔다. 유럽연합(EU)도 14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에서 이에 지지를 보냈다. 문제는 어떻게 목표를 이루느냐이다.

우리의 옵션은 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을 당시와 같다. 북한에 대한 유화책과 군사봉쇄, 협상이 그것이다.

이 중 유화책은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이 주장하는 핵무기 보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 동북아에서 핵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위험을 심화시킬 뿐이다. 일단 핵을 보유하게 되면 북한은 다른 국가들에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이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불가피하게 전쟁이 필요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은 남북한은 물론 일본 국민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끼칠 것이다. 동북아와 다른 지역의 경제활동은 심각히 교란될 것이다. 제2의 한국전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의 핵 대결 위험을 안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평양과 워싱턴은 서로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측은 실패한 전략에 집착하고 있다. 평양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미국이 협상을 시작하게끔 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경제적,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굴복하게 만들려고 한다. 양측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은 채 상대가 외교적 교착상태를 타개할 조치를 먼저 취할 것을 요구한다.

실제론 양측이 공식성명과 언론 매체를 통해 간접 협상을 벌이고 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한성열 차석대사는 10일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북한은 협상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성명에선 제네바 합의의 일부와 북-미 불가침협정, 북한 자주권 존중 문제에 관해 미국과 협상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들 모두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결국 북한은 93년 6월11일 북-미 공동성명에서 빌 클린턴 당시 행정부가 약속한 것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 △핵을 포함한 무력사용이 없을 것을 보장하고 △상호 자주권 존중 및 불간섭을 포함해 비핵화된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맨해튼의 작은 빵 가게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이에 관한 초안을 만들었다.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북한이 이 같은 약속을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외교적 합의 형태로 보장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5일 대북 성명에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고 확인한 뒤 그가 지난해 6월 북한에 포괄적 대화를 제안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의 비밀 핵개발이 관계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가시적으로 폐기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같은 요구는 남북한간의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및 제네바 합의와 일치하는 것이다.

▼北-美협상 과연 진전 있을까▼

그러나 오만과 상호 불신이 협상 시작을 방해하고 있다. 북한은 핵을 개발, 다른 국가들에 협상을 강요하겠다는 전략이 위험하며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평양은 또 자주권을 인정받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전면협력을 포함, 국제 기준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보상 없이 북한에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만두어야 한다. 역사상 어느 국가도 자발적으로 무장을 해제한 적은 없다. 부시 행정부는 또 김정일 정권이 붕괴 위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가까운 장래에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향해 진전을 거둘 것인지는 여전히 심각하게 우려된다.

케네스 퀴노네스 아시아태평양 연구센터·전 미 국무부 북한 분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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