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선우/진실규명 목숨 걸겠다더니…

  • 입력 2002년 10월 18일 18시 44분


17일 오전 11시2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金大業)씨가 돌연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굳은 얼굴로 자신이 제출한 테이프는 ‘전혀 조작되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입장’을 낭독한 김씨는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안. 김씨와 기자 그리고 제3의 인물 등 3명이 탄 작은 공간에서 기자는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러나 그는 “수상한 사람(제3의 인물)이 있어 얘기할 수 없다”고 속삭이면서 대답을 피했다. 제3의 인물을 곁눈질하는 김씨의 표정에는 초조와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김씨는 건물을 나선 후 정작 둘만 남게 되자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한 채 총총히 사라졌다.

이날 김씨가 ‘입장 발표’를 한 기자회견장은 종전과 달리 냉랭한 분위기였다. 전날 검찰이 김씨가 제출한 테이프를 감정해 ‘편집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김씨가 나타날 때마다 ‘또 다른 폭로’를 기대했던 분위기와는 다른 기류였다.

김씨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앉을 때나 일어설 때 수술의 후유증인 듯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폭로 초기 ‘강렬한’ 눈빛을 내비치며 확신에 찬 듯 발언하던 표정과는 달랐다.

김씨는 기자회견 직후 참석키로 했던 한양대 행사에 ‘건강이 안 좋다’며 불참했다. “나는 절대로 도망가지 않는다” “진실규명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던 몇 달 전의 ‘결의’와는 대조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가급적 꺼리는 느낌이었다.

검찰의 테이프 감정 결과 발표로 김씨는 이제 ‘결백’과 ‘진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검찰과 언론이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그의 불만도 갈수록 설득력을 잃고 있다.

입증되지 않거나 악의적으로 조작된 정치 폭로전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진정 김씨가 자신의 주장대로 국민과 정의를 위해 폭로를 했다면 더 이상 피하지 말고 갖고 있다는 모든 자료와 진실을 당장 밝혀야 한다. 국민을 더 이상 ‘우롱’해서는 안 된다.

김선우기자 사회1부 sublim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