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된 현실서 만난 무지개빛 환상 '오즈의마법사'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8시 09분


L 프랭크 바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도로시 역을 맡은 주디 갤런드가 부른 주제곡 ‘무지개 너머’로 큰 인상을 남겼다.-동아일보 자료사진-
L 프랭크 바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도로시 역을 맡은 주디 갤런드가 부른 주제곡 ‘무지개 너머’로 큰 인상을 남겼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오즈의 마법사(총14권) / L 프랭크 바움 지음 존 R 닐 그림 최인자 옮김 / 각권 8000원 내외 문학세계사

영국에서 해리 포터가 등장하고 세계를 휩쓸 때, 아마도 미국인들은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이미 백 년 전에 오즈 이야기가 있었노라고.

1900년 프랭크 바움이 쓴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처음 출간되자, 미국인들은 캔자스 주의 평범한 시골 소녀와 강아지가 등장하는 이 새로운 환상 세계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계속해서 더 많은 오즈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어쩌면 단 한 권의 책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이 이야기는, 결국 바움 자신이 직접 쓴 열 세 권의 시리즈과 그를 흉내낸 수많은 작가들의 아류작, 뮤지컬, 12편의 흑백 영화로 끝없이 이어졌다.

마침내 1939년, 빅터 플래밍 감독이 아름다운 칼라 영화 ‘오즈의 마법사’ 를 완성하자, 오즈는 미국의 새로운 신화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오즈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문화 텍스트 속에서 재인용되고 재생산되고 있는지는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14권이나 되는 오즈 이야기들은 저마다 독창적인 줄거리를 갖는다. 독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오즈 시리즈를 그만 두고 싶어했던 바움의 소망 덕분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2권 ‘환상의 나라 오즈’ 같은 작품에서는 도로시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쨌든 바움은 평생 오즈를 떠나지 못했고 심지어 1919년에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오즈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서 14번째 작품인 ‘오즈의 착한 마녀 글린다’가 출간되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이 세상에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며, 환상의 나라 오즈에 머무르지 않고 황량하고 가난한 캔자스의 집으로 되돌아오는 도로시의 순진함을 사랑했다. 에머랄드 도시의 환상이 눈부시면 눈부실 수록, 변함없이 늙고 초라한 농부 아저씨 곁으로 돌아오는 도로시가 그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즈 시리즈 6권인 ‘오즈의 에메랄드시’에서 마침내 헨리 아저씨는 파산을 하고, 도로시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부부를 데리고 완전히 오즈의 나라로 떠나버릴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세상에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신화는 깨어지고 만 것이다.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출간될 무렵의 미국 또한 결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가난한 농부들이나 노동자들에게는 그랬다. 1880년부터 1900년까지 미국은 살인적인 불황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즈와 캔자스를 오가는 도로시의 모험이 되풀이 될 때마다, 현실과 환상의 간격은 점점 넓어갔고 마침내 바움 자신도 그 차이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1909년에 환상과 에메랄드 도시 오즈를 연상시키는 황금빛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한 바움은 환상의 생산 공장인 헐리우드 가까운 곳에 ‘오즈의 작은 집(Oz cot)’을 지어놓고 평생을 지냈다. 도로시와 바움은 더 이상 현실로 돌아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환상은 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환상이란 안경을 쓰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바라볼 수 없다. 오즈의 마법사는 번쩍이는 에메랄드의 도시의 비밀이 사실은 사람들의 눈에 쓴 초록색 안경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회색 안경을 끼고 하늘과 땅, 사람들 심지어 풀마저도 온통 회색 뿐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움은 오즈 이야기라는 무지개 빛 안경을 선물한 것이다.

최인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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