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43…돌잡이 (9)

  • 입력 2002년 10월 8일 18시 14분


이나모리 키와는 정좌를 하고서 먼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눈길로 조선말의 울림을 듣고 있었다. 옆에 앉은 남자애에게 부탁하면 통역을 해주겠지만, 단어는 다소 알아들을 수 있고 표정을 보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다. 이렇게 조선 사람의 집을 찾을 때면 새삼 외지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사람들에게 일본 사람이란 외부인이다. 외부인이지만 당신들이 생각하는 외부인과는 다르다고 설명하고 싶은 기분도 있지만, 과연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저는 도쿄의 이케노하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케노하타에서 태어나 자랐고, 스무 살 때 결혼한 남편도 같은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의 집안은 삼대 째 도자기 파는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저도 아들이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장사를 도왔지만 먹고 살기가 고작이라 조산원 면허를 따서 산파 일을 시작했습니다. 반도에 가면 땅도 거저 얻고, 쌀이나 물자가 풍부해서 주리는 일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아들이 처자식을 데리고 반도로 건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편지나 엽서를 통해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남편도 마음이 동해서 집과 가재도구까지 전부 팔아 시모노세키 항에서 사츠마 마루를 탄 것이 벌써 12년 전 일입니다. 아들의 큰딸은 열 여섯 살이었으니 이케노하타에서의 생활을 기억하고 있지만, 세 살이었던 막내아들은 아무 기억도 없습니다. 큰딸과 둘째 딸은 이 곳에서 선을 봐 가정을 꾸렸고, 셋째 딸도 작년 봄에 시집을 가서 이제 곧 산달이 됩니다. 증손자들의 고향은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가곡동입니다. 그리고 증손자들에게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이케노하타는 가본 적조차 없는 타향입니다.

우에노의 숲과 시노바즈 연못, 도쇼궁(宮)과 타니노나카 묘지가 꿈에 나타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떨려 잠에서 깬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돌아가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정말 돌아가자고 생각한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츠마 마루가 닻을 올린 그 순간에 저는 돌아갈 장소를 단념한 것입니다.

남편은 5년 전에 죽어 가곡동 신사의 납골당에 묻혔습니다. 우리 일본 사람은 철도와 관공서와 경찰서, 그리고 은행과 학교와 납골당을 지었습니다.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포기와 각오를 하나 하나 쌓아올려, 우리는 우리들의 거리를 만든 것입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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