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一. 四海는 하나가…(23)

  • 입력 2002년 10월 3일 18시 55분


짧은 제국의 황혼 ②

이사의 계책들은 잘 맞아 떨어져 많은 제후국의 명사들이 겉으로는 가장 저희 나라를 생각하는 체하면서 실은 진나라를 위해 연횡책(連橫策)을 우겨댔고, 더 많은 뛰어난 장수와 대신들이 진나라의 이간책에 걸려 자기 나라와 임금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모질고 독하지만,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앞당기는데 그보다 더한 계책도 없었다. 이에 시황제는 이사를더욱 무거운 예로 대접하여 객경(客卿)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이사에게도 위태로운 때는 있었다.

한(韓)나라의 정국(鄭國)이라는 사람이 진나라로 벼슬을 살러 왔다. 정국은 수로(水路)를 여는 일과 관개(灌漑)를 돌보는데 재주가 뛰어난 사람으로 경수(h水)에서 낙수(洛水)까지 3백 리에 이르는 큰 운하(運河)를 파서 농사를 위한 수로를 겸하기를 권했다. 겉으로는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일 같았지만, 실은 그 엄청난 공사로 진나라의 국력을 소모시켜 이웃을 침략할 수 없게 만들려는 한나라의 계책이었다.

그런데 오래잖아 그같은 한나라의 음모가 탄로 나고, 정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진나라로 와서 벼슬 살던 모든 이들이 쫓겨나게 되었다. 시황제로부터 받은 신임과 총애 탓에 진나라 토박이들의 시기를 받아오던 이사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때 이사가 올린 글이 저 유명한 <상진황축객서(상진황축객서)> 또는 <간축객서(諫逐客書)>이다.

<........무릇 물건이 진(秦)나라에서 나지 않았더라도 보물로 여길만한 것이 많고, 선비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진나라에 충성되기를 원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밖에서 온 (재주있는) 이들[客]을 내쫓아 적국[諸侯國]에 보탬이 되게 하고, 찾아온 백성을 버려 원수의 나라에 이익이 되게 한다면, 이는 안으로는 나라를 비게 하고, 밖으로는 그 원망하는 마음을 제후들에게 옮겨 심게 하는 격이니, 나라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라도 그리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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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이 나는 그 명문(名文)은 젊은 시황제를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황제는 모든 빈객에게 내렸던 축출령(逐出令)을 취소하고 이사의 벼슬을 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도리어 이사를 전보다 더 무겁게 쓰니, 오래잖아 그의 벼슬은 구경(九卿)에 하나인 정위(庭尉)에 이르렀다.

시황제의 신임은 천하를 아우른 뒤에도 이어져 마침내 이사의 벼슬은 승상에 올랐다. 기록에 따르면, 시황제의 손꼽히는 폭정 가운데 하나인 분서갱유(焚書坑儒)도 실은 이사의 진언을 따른 것으로 되어있다. 법가(法家)다운 이단박멸(異端撲滅)의 의지를 시황제가 들어주었을 뿐이라고 한다.

근래 이사에게 있었던 일로 시황제가 전해듣고 흐뭇해한 것은 어떤 술자리에서 이사가 스스로를 경계하며 내 쏟았다는 탄식이었다.

이사에게는 아들과 딸들이 많았는데 한결같이 높은 벼슬에 오르거나 지체가 귀해졌다. 맏아들 이유(李由)는 낙양(洛陽)을 치소(治所)로 삼는 삼천군(三川郡) 군수에 이르렀고, 나머지 아들들은 모두 공주에게 장가들어 부마(駙馬)가 되었다. 또 딸들은 한결같이 진나라의 귀공자들에게 시집가 벼슬 높고 재물 많은 대갓집 젊은 마님이 되었다. 아비 이사의 그늘이 미쳤음이라.

그런데 어느 날 삼천군수로 나가있던 이유가 휴가를 얻어 함양으로 돌아왔다. 이사는 오랜만에 돌아온 맏아들을 반겨 크게 술잔치를 열고 가까이 지내는 조정의 벼슬아치들을 몇 청했다. 그러나 황제로부터 신임 받는 승상의 위세를 겁낸 것인지 부르지도 않은 조정의 관리들까지 이사의 집으로 몰려들어, 대문간은 저자처럼 시끌벅적하고 넓은 뜰에 묶인 말과 수레는 수천이나 되었다. 그 광경을 내다본 이사가 문득 정색을 하며 탄식처럼 말했다.

“아아, 나는 스승[荀卿]께서 세상 모든 사물은 지나치게 가득 차게 되는 것을 피해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무릇 나 이사는 상채(上蔡)땅에서 태어난 검수(黔首)의 자식이고, 촌구석 골목길에서 자란 보잘것없는 인간인데, 폐하께서 나의 못남과 모자람을 알지 못하시고 여럿 속에서 뽑으시어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해주셨다. 지금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가 없으니 부귀가 지극한 곳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이 극도에 이르면 쇠퇴한다 하였는데, 실로 내가 어디서 멈춰야할 지를 모르겠구나!”

그같은 말은 시황제 같은 절대군주가 다스리기 거북한 이상(理想)이나 경계해야할 만큼 큰 야심도 없는 신하로서의 이사를 잘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속되지만 솔직하면서도 소박한 그 시대의 책상물림 하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해 초 시월(진나라는 하나라 달력으로 10월을 새해로 삼았다) 시황제가 순수(巡狩)를 떠날 때, 우승상 풍거질(馮去疾)은 도성에 남기고 좌승상 이사를 데리고 나온 것은 그의 또 다른 재주 때문이었다. 남다른 수행(隨行)능력이 그랬다. 이사는 윗사람의 뜻을 잘 헤아리고 예절과 의전(儀典)에도 아울러 밝았다. 거기다가 변화에도 기민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줄 알아 시황제의 움직이는 조정(朝廷)을 맡길만했다.

하지만 병심(病心)에서일까, 시황제에게는 언제나 미덥기만 하던 이사가 그날 따라 곱게 보이지 않았다. 나이 예순을 넘겼으면서도 노쇠의 기색은커녕, 이제 갓 쉰이 된 자신보다 더 단단하고 꼿꼿해 뵈는 게 시황제 특유의 시기심을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좀체 목소리에 감정을 담지 않는 시황제가 누가 들어도 차게 느껴질 목소리로 물었다.

“좌승상은 무슨 일로 짐을 찾았는가?”

“활과 쇠뇌를 뱃전에 거는 일을 그만두도록 하셨으면 합니다.”

“귀신이라도 황제의 위엄에 맞설 수는 없는 터이다. 짐은 그 활과 쇠뇌로 감히 짐의 꿈자리를 어지럽힌 요망한 물귀신을 쏘고자 하는데 좌승상은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가?”

“폐하께서는 며칠 전 지부로 가는 뱃길에서 이미 그것을 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옥체 미령(靡寧)하시니 모두가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차라리 태의(太醫)를 부르시옵소서.”

옥체 미령이라는 말에 시황제는 다시 울컥 짜증이 났다. 몸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사가 알아보았다는 게 공연히 화가 났다. 평소 시황제는 자신이 어디에서 묵고 있는 가조차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다. 함양 부근 2백리에 흩어져 있는 2백 일곱 곳의 별궁(別宮)과 이궁(離宮)을 옮겨 다니면서 자신이 머무는 곳을 함부로 발설하는 자가 있으면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다.

짐은 조짐(兆朕)이거늘.....그러자 문득 이태 전의 일이 떠오르며 이사에게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던 노기가 새삼 솟구쳤다.

그해 시황제가 함양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양산궁(梁山宮)에 행차했을 때였다. 높은 곳에서 보니 뒤따라오는 한 떼의 수레와 기마가 있었는데 의장이나 위세가 자못 당당했다. 시황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게 누구의 행렬이냐?”

“좌승상과 그를 따르는 수레들입니다”

곁에 있던 신하 하나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에 시황제는 더 묻지 않았으나 언짢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참이나 이사를 따르는 행렬을 노려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사가 자못 위세를 부리는구나”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그런 시황제의 말을 이사에게 가만히 전해주었다. 놀란 이사는 그날로 자신의 수레를 검소하게 꾸미고 따르는 수레와 기마(騎馬)를 줄였다. 며칠 뒤 그걸 알아본 시황제는 더욱 화가 났다.

“이는 궁궐 안의 누군가가 감히 짐이 한 말을 이사에게 몰래 전해준 까닭이다!”

그리고 당시 곁에 있던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하나씩 캐물었으나 아무도 자신이 그랬다고 하는 자가 없었다. 이에 모두 사형에 처했는데, 그래도 이사를 직접 벌주지는 않았다.“짐이 병들었다고 누가 말하던가?”

시황제가 엄한 얼굴로 그렇게 묻자 이사는 바로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시침(侍寢)한 후궁이나 환관에게 들은 것도 있고, 수라간에서 알아본 식사량으로 짐작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그들을 댈 수는 없었다.

“폐하께서 환후(患候)가 있다는 뜻이 아니오라, 신이 보기에 심기 편치 않으신 듯 하와.....”“함부로 짐을 헤아리지 마라! 심기가 편치 않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그러자 이사가 정색을 하며 받았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께서 너무 요망한 무리의 말을 믿어 심기를 상하고 계신 듯합니다. 대저 황제란 왕들 중의 왕[王中之王]이요 귀신의 우두머리[天神之首]가 아니옵니까? 여섯 나라를 쳐 없애고 그 왕들을 모두 신하로 삼으신 것처럼, 귀신들도 폐하의 위엄으로 꾸짖고 부리시면 될 것입니다. 병마(病魔)와 요귀(妖鬼)는 엄히 벌해 쫓으시면 될 일이요, 수(壽)를 더하시려면 칠성노군(七星老君)에게 명하시면 될 일입니다. 구차하게 쇠뇌로 잡귀를 쏘는 것은 폐하의 위엄에 맞지 않은 일이옵니다.”

30년이 넘게 시황제를 모셔온 경험으로, 둘러대고 꿰어 맞추려고 하다보면 더 큰 낭패를 당한다는 걸 잘 아는 이사라 처음부터 진언하려던 말을 바로 털어놓았다. 이전 같으면 그 정도로 달랠 수 있었으나 그날은 달랐다. 시황제가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좌승상은 있지도 않은 짐의 병을 말하더니, 이제는 수를 앞세워 감히 짐의 죽음을 얘기하는 것이냐? ”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구나 - 시황제로부터 뜻밖의 호통을 들으면서 이사는 등줄기로 식은땀을 흘렸다. 수많은 목숨들이 거기서 한발 잘못 디뎌 천길 나락으로 떨어진 그 벼랑 가에 자신도 드디어는 서게되었다는 느낌이었다. 그 위기감이 순발력이 되어 입으로 쏟아졌다.

“아니옵니다. 지금 저는 폐하의 병과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도 한 분이시고 하늘에서도 한 분이신 폐하의 위엄과 권능을 아뢰고 있는 것이옵니다.”

거기서 잘못 응대해 어이없이 죽어간 숱한 목숨들이 곁에서 구경할 때는 그저 어리석고 미련스럽기만 했으나, 자신이 그 벼랑을 실감하고 보니 끔찍했다. 내가 이런 처지에 빠지다니. 아아, 나는 이미 멈추어서야할 곳을 지나버린 것은 아닌가.

오래 익숙했던 암시가 효과를 낸 것인지, 시황제는 이사의 진지하면서도 확신에 찬 말을 듣자 마음이 좀 가라앉는 듯했다. 뻔한 거짓말이라도 이사가 그만의 연출과 함께 정면으로 맞서오면 믿고 싶어졌다.

(그래, 아직은 더 네 말을 믿고 싶다. 아니 진실로 네 말과 같기를 바란다.)

시황제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나 표정은 엄하기만 했다. 한동안을 뱃속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눈길로 이사를 쏘아보다가 차갑게 말했다.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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