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정위, 4900억원 못찾나 안찾나

  • 입력 2002년 10월 2일 18시 43분


남북정상회담 뒷거래의혹의 핵심 고리인 4900억원의 행방을 밝히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가. 이만한 거액의 자금이 기업간에 오고 갔다면 간단한 조사로 찾아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수천만원, 수억원의 자금흐름까지 따져 계열사간의 부당내부거래를 전문적으로 찾아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하고도 이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공정위는 산업은행에서 4900억원의 자금이 현대상선으로 긴급 지원된 지 2개월후인 2000년 8월에 현대상선에 대해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에는 현대상선이 4900억원을 지원받은 사실과 사용처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공정위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거나 조사 결과를 숨기지 않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해명은 더욱 이상하다. “당시 현대상선이 낸 기초조사자료에는 4900억원을 당좌대월받은 사실이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은 공정위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 말대로 조사대상기업이 내지 않은 자료라 밝혀내지 못했다면 이런 수준의 기관에 어떻게 공정거래 조사를 맡길 수 있겠는가.

공정위는 철저하게 기획조사를 하는 곳이다. 올해 6대 그룹에 대해 서면조사를 하면서 상시 감시 차원의 조사라고 둘러댔던 공정위가 조사계획서까지 만들었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토록 의욕이 넘치는 공정위가 유독 현대상선에 대해서만 너그러웠다면 이 기관의 조사가 불공정한 것이고, 모든 기업에 대해 허술하게 조사한다면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공정위는 현대상선 조사를 안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여부부터 조사받아야 될 것이다.

이제 4900억원의 행방을 밝히는 일은 한시라도 지연되어서는 안된다. 공정위나 금융감독위원회가 더 이상 조사를 미룰 수 있는 명분은 없다. 오죽했으면 금융감독원 노조가 산은에 대한 특별감사와 현대상선에 대한 특별감리를 촉구했는지 이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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